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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북이 Jan 18. 2021

다 담기엔 조금 작은 방

선택의 기준

대학생이 되고 시작한 서울에서의 자취가 졸업 후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했다. 지하철역과의 거리, 주변 시설, 방의 크기, 보안상태 등. 내가 포기해야 할 선택지의 리스트. 이 중 가장 단념할 만한 건 방의 크기였다. 그래서 내 방은 나의 많은 욕심을 담기엔 조금 작다. 최대한 불필요한 짐을 주기적으로 버리고 새로운 가구나 물건도 잘 들이지 않던 내게 요 며칠 엄청난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하얀 색의 예쁜 원형 테이블이 갖고 싶어졌다. 가구가 차지하는 것보다 공간에 여유가 있는 게 좋아 그동안 식탁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생활했다. 책상에서 공부를 하다가 상을 펴고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것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집에서 거의 모든 끼니를 해결하게 되면서 계속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게 불편해졌다. 갑자기 매일 요리를 하기 시작한 스스로가 대견했던 참인데 이 기회에 테이블을 장만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그 테이블을 활용할 상상에 설레기 시작했다.


테이블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자 몸이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마음 먹기가 무섭게 온갖 사이트에 들어가서 테이블을 찾고 비교하고 친구에게 도움을 구하고 이케아까지 다녀왔다. 고작 하루만의 일이다. 테이블을 둘 공간을 마련하고 수많은 제품의 내구성과 가격과 심미성을 고려해 몇 가지의 완벽한 후보를 추려내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선택만 남게 되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고민을 하던 중 친구의 초대를 받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친구가 미리 만들어놓은 감바스의 마늘향과 빵의 고소한 냄새에 내 모든 감각이 반응했다. 그런데 주방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자 그 강렬했던 후각의 진동이 멈췄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친구의 전자피아노였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게 가장 싫은 이유 중에 하나였던 피아노.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건 피아노 의자 위였다. 혼자 생활하게 되면서 잃게 된 나의 일상이자, 취미생활이었다. 하지만 피아노는 대학 생활 동안 바쁜 공부와 새로 찾은 즐거운 놀이에 재미가 잊혀졌고, 시도 때도 없이 산 옷들을 감당하기 위해 놓인 행거와, 없으면 불편한 전신거울, 협탁 등에 밀려 내 방 안에 자리잡을 공간을 쟁취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피아노를 내 일상의 한 틈에도 내어주지 않은 채 몇 년을 지내왔다.


내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친구의 오래만에 연주 하나 해달라는 말에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봤다. 너무 당연해서 플래너에 적어놓지 않았는데 깜빡 빠뜨린 일과를 알아챈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피아노를틈날 때마다 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전자 피아노를 검색하고 방에 놓을 공간을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피아노를 위한 공간은 한 곳 밖에 없었다. 테이블을 두려고 만들어 놓은 여유공간. 두 개 다 담기엔 조금 작은 방이었다. 예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고 카페에 온 듯 책을 읽을 생각에 이미 신나있었는데 피아노 사이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니! 그동안 두 개 모두 없이도 충분히 잘 흘러가던 시간과 공간의 일상이 팽팽한 고민으로 가득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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