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 헤드라인이 매번 뜨겁다. 학부모의 권리의식은 비뚤어졌고, 정치인들은 국민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일하기 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국민들은 길거리에서 혹여나 흉기에 찔릴까 걱정하며, 잘 사는 삶의 척도는 교양과 지혜가 아닌 물질의 축적 정도이다. SNS에서는 내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되어 삶의 하이라이트를 남들에게 뽐내기 바쁘다.
한국은 과연 행복한 삶을 일구기 과연 적절한 국가인가?
있잖아 옛날에 어떤 나라가 있었어. 그 나라는 너무 가난했거든? 뭘 생각할 틈이 없었대. 삶의 이유가 뭐가 중요해. 못살아서 당장 돈 벌러 나가야 하는데. 그래서 나라를 공장으로 만들었대. 사람을 수단으로 돈을 만들었지. 그러니까 돈이 목적이었고 사람은 수단이었던거야. 근데 말이야. 그랬더니 풍요로워지더라?
지금의 한국 사회를 관망하다보면 ‘공장’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사를 관통하는 성찰의 주제는 ‘인간은 왜 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담론이다.
인문학과 철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이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현재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인간이 살아가는 것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정답을 이미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이 글을 보는 모두가 알 것이다. 세계사에 단기간에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한국 경제를 표현하는 말이며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은 곧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온 국민이 돈만 쫓았다는 뜻도 내포되어있다.
돈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타인으로부터 어떻게 득할 수 있을까’라는 작은 질문에 의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뤄 지금에 이르게 것이다.
하지만 세계에 유래없는 소위 ‘돈 공장 사회’였던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왜냐하면 시대의 변화가 일어날만큼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산업 역군으로 불리는 세대는 생존해있으며, 우리는 그 세대의 직후 또는 그 다음 세대에 불과하다.
이 거대한 공장의 하위 일꾼이었던 세대는 세월이 지나 공장장이나 공장 중간 관리자의 위치에 버젓이 존재하고있다. 그 후대들은 ‘이거 이렇게 사는게 맞는건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연스레 공장에 귀속된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을 가진 포유류이면서, 고차원적인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생명체이다. 전자의 성질은 쥐나 개와 같은 동물의 성격을 가지고, 후자의 성질은 로봇이나 AI의 성격을 가진다.
인간은 이 상반되는 두 개의 성질을 동시에 가진 존재이기에 너무나 복잡하다. 욕구를 해소하고 싶지만 또 극도로 조절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져 튀어나가는 자석의 같은 극과 같은 두 개의 성질을 아슬하게 조절하며 살아간다. 인문학과 철학은 이렇게 복잡한 인간의 생에 대한 연구와 성찰을 위해 창조되어 발전했다.
돈 잘 벌었으면 됐지 그게 그렇게 잘못된건가?
요즘 주요 뉴스를 보면 이슈가 많다. 극악한 범죄, 비뚤어진 권리의식의 만연, 혐오와 분쟁..
필자는 이 갈등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점점 심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한국이 돈 공장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앞서 언급했던 인간이 가진 두 개의 상반되는 두 개 성질 중 어느 것을 위해 탄생한 것인지 생각해보자. 화폐의 발전은 인간 지성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의 성질을 가졌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만, 돈은 생존이라는 동물적 본능을 위해 탄생한 개념이다.
즉, 돈에 대한 몰입은 인간 본능에 대한 몰입이다.
그것도 인간 본능 중 생존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 대한 몰입말이다.
우리는 너무나 본능에 몰입해온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삶의 많은 부분을 본능에 맡긴다.
이것은 인터넷 뉴스 댓글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누군가 잘못을 한 기사에 대해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비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판의 정도가 아니라, 마치 부모의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혐오를 표현한다.
인터넷 기사는 어떤 사실을 전달하는 매체일 뿐이다. 의견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댓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과도하게 원초적인 반응을 이성을 거치지 않고 표현한다.
그리고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갑질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과 자녀의 평안을 극도로 우선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당파 싸움이 매번 치닫는 정치계도 다를 것이 없다. 자신의 생존과 평안을 우선으로 여기는 기득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필자는 물질적 풍요가 객관적으로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 전체가 소위 정말 빡세게 가동시켰던 돈 공장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한 공장 사회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치명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생각해보자. ‘당장 돈 벌러 나가야 하는데, 삶의 이유가 무엇이 중요하냐!’고 외쳤던 너무나 가난했던 그때와 지금은 다를까?
생각해보자. 책은 읽고 싶지 않지만 돈은 많이 벌고 싶지 않은가?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