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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Won Jul 01. 2023

감사

오늘도 당신이 궁금합니다

  몇 년 전 시니어 클래스 동양화 반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나이가 70이 훨씬 넘어 보이는데 머리에 꽂은 리본이 아주 컸기에 인상적이었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해 보인 그녀도 대부분의 많은 시니어들이 그렇듯 배우려는 몸의 속도보다 마음의 속도가 빨라 진도는 더뎠다.  그들 대다수가 부모님 연배라 그런지 몸의 굼뚬과 환하게 웃는 모습은 꼭 친정엄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슬쩍슬쩍 그들을 돕게 되었다.  미원 씨, 미원 씨를 불러가며 선생님이 계셔도 나에게 질문하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은 꼭 어린아이 같았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수업대신 비대면 강좌가 개설되었고, 나는 시니어 아카데미에서 캘리그래피 수업을 맡게 되었다.  정규 교과과목이 처음이고, 줌이라는 온라인도 처음이다.  또한 서예는 알아도 캘리그래피를 모르는 시니어들이 대다수라 걱정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등록했고, 그 안에는 그녀의 이름도 있었다.  그녀는 전부터 나에게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싶었지만, 동양화반 선생의 눈치가 보인다고, 다음엔 꼭 등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며 웃었다.  캘리그래피가 고국에선 이미 많은 곳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온라인 수업도 시니어들에겐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라 컴퓨터 작동에 어려움을 겪다가도 화면 속 반가운 지인들이 보이면 신기해했다.  초보과정이고 생소한 수업은 한동안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게 보였다.  아직까진 자신만의 글씨체가 완성되지는 않았어도 캘리그래피를 배워 행복하다고 표현할 때면 나는 기운이 났고, 사명감도 생겼다.  


  어느덧 마지막 수업이 다가왔다. 나는 학생들에게 "감사"에 대한 캘리그래피 숙제를 냈다.  수업하면서 학생들이 느낀 감사의 대상은 누구이며, 혹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에 스토리가 있어야 재미있듯, 캘리그래피에도 스토리가 있으면 재미있고 쉽다. 학생들은 나처럼 감사에 대해 한주 내내 생각한 것 같다. 내가 먼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두 분의 성함을 화선지에 한 주 내 내 적으면서 그리움과 감사로 한주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학생들도 본인들이 느낀 가슴속 감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오늘 이 시간이, 아직도 건강해서 배울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제일 많이 했다. 


  잠시 후, 내일모레면 80이 되어 보이는 그녀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묵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가 어릴 적 북한에서 살고 있을 때 전쟁이 났다고...  온 가족이  남한으로 피난 오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아버지 없는 제주도 피난살이는 너무 가혹했고 힘들었다고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그런데도 그 당시 30대의 그녀의 젊은 엄마는 올망졸망한 자식 다섯을 키우기 위해 재가도 안 했으며, 또한 고아원에도 보내지 않고 형제들을 잘 키운 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이번 주 내내 했다고.... 그 말을 하는데 학생들 대다수가 전쟁의 아픔을 겪었기에 온라인 속 학생들 모습은 숙연했다.  나는 그녀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캘리그래피를 배우면서 아픔을, 감사를 그리고 행복을 화선지에 표현할 수 있게 된 그들이 고마웠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그녀에게 이메일이 도착했다. 젊고 이쁜 미원 씨를 우리들의 선생님으로 보내줘 주님께 감사기도를 먼저 했다는 내용이다. 나는 젊지도 이쁘지도 않은데, 새내기 시니어일 뿐이데 나의 진심이 담긴 수업에 감명 깊었다며 나에게 감사하다고 메일 속 그녀가 말한다. 가르치는 건 배우는 것보다 어렵다. 한 시간을 가르치기 위해 나는 한 주내내 열심히 공부를 해도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더 많았다.  수업에 참석 못한 학생들을 위해 매번 요약해서 보내주는 내 모습을 어여삐 본 것 같다.  내가 힘들 때 캘리그래피를 연습하면서 내 삶을 위로받았다는 진심을 그들은 이해한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도 도전해 보라는 말에 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녀처럼 학생들에게 감사 표현이 줄줄이 이메일로 들어왔다. 이런 장면들이 나에게 발생된 것이 참 신기하고 뿌듯했다. 이메일을 읽다 보니, 이민 온 딸이 보고 싶어 매주 띄어쓰기와 받침이 틀린 친정엄마의 편지를 받던 때가 생각나 자꾸 울컥했다.  다음학기에도 수강하겠다는 그들의 글 속에서, 화면 속 표정에서 아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벌벌 떨며 시작한 수업을 위해 예습, 복습도 부족해 노트에 필기와 리허설까지 하던 첫 학기가 끝났다.  처음엔 대본을 만들어 준비했지만,  한주의 주제만 설정하여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날의 주제에 맞게 캘리그래피로 풀어가는 수업을 이어 나갔다.  주제에 맞는 시나 좋은 글귀를 읽고 쓰면서 진도를 나갔다.  수업에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나이에 상관없이 소녀감성을 가져서 인지 그들의 모습은 늘 상기된 소녀들 같았다.  


  나는 내면의 삶을 글로 자주 표현하던 어린 시절 덕에 시인으로, 수필가로 그리고 캘리그라퍼로 살고 있다.  글이든 그림이든 시작은 모두 선이다.  시와 수필은 작가의 마음을 글로 표현한 거라 캘리그래피 보다 이해가 쉬운 것 같다. 캘리그래피는 한 획 한 획의 모양에 따라 느낌이 다른 어려운 작업이다.  화가들처럼 그림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듯 캘리그래퍼의 작품도 비슷하다.   삶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아야 된다고 믿으며 글을 써왔고, 글을 그렸다.  3년 동안 이어간 수업을 이젠 글을 쓰기 위해 쉼이 필요하 다는 내 말에 그녀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언제고 다시 수업하면 꼭 들어가겠다는 예전 같은 약속을 하는 모습에 황송했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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