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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당고수 N잡러 Apr 25. 2024

갱년기 중년에 나를 찾는 유럽 여행

일과 육아, 가정을 떠나 나만 생각하기

1. 여행의 결정의 장애물을 넘어가며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솔직히 실행가능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변호사, 변리사, 온라인교육사업, 소비자단체 부회장, 보험설계사에다가 최근 시작한 건강기능식품 자율심의기구 심의위원장직까지 정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벌여놓은 일들을 추스리기에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4남매의 아빠에 아직 '푸카'를 해줘야 초등학교 1학년 막내딸에 배드민턴과 축구를 해줘야 하는 쌍둥이 아들에 사춘기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큰딸을 와이프에게 남겨두고 떠나도록 허락해 주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50이 되면서, 변호사일을 10년 넘게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으로 우울해하는 남편을 보면서 항상 용기를 북돋아주는 아내의 통 큰 결단으로 마일리지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2. 모든 일은 클릭에서 시작된다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는지라 바로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마일리지 항공권부터 알아봤습니다. 최대한 비용을 아낀다는 어필을 해야 제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얕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 2년 전 딸아이와 함께 갔던 로마로 가는 항공권이 20만 원 정도의 비용만 지불하면 가능했고, 돌아오는 여정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그토록 많이 들어본 대영박물관과 뮤지컬의 본토라고 하는 런던, 러브액츄얼리에도 나왔던 히드로공항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도 40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라 주저할 것이 없었습니다.




항공권을 결제한 것은 2024. 1. 5.이었지만 솔직히 2024. 4. 9.  출발일 직전까지도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빠서 숙소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3월 말이 되어서야 로마에서 민박, 피렌체에서 기차역 앞 저가 호텔, 런던에서 뮤지컬극장과 가까운 안전한 호텔로 예약을 완료했습니다(자세한 건 나중에).


3. 혼자 가는 여행이기에 가벼운 몸가짐으로


원래 옷을 잘 못 입고, 편한 것을 추구하기에 양복에도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다닌 지 오래고 학창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을 하면서 웬만큼 지저분한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기에 이번 여행을 위해서 정말 투박한 배낭하나만 메고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서 최대한 많은 짐이 들어가면서 싸고 튼튼한 가방을 골랐는데, 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보는 사람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는 너무 크고, 세련되지 않으며, 실제 여행에서는 무거워서 사용하기 불편할 것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배낭을 메고 다닐 일은 오로지 여행지에서 공항에 도착한 후 숙소로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간소한 복장에 현금 약간과 카드 2개 정도를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솔직히 많이 들고 다닐 일은 없었지만 노트북, 속옷 3개, 반팔 티셔츠 3개, 조깅복 1벌, 양말 4켤레 정도가 전부인 짐을 넣기에는 충분해서 1/3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 가장은 지금도 업무용으로 메고 다니고 있습니다. 잠바, 청바지는 입고 간 것을 2주일 동안 그대로 다녔습니다.


철저하게 최소한의 짐으로 여행해야 편하다는 원칙, 기념품을 살 필요가 없다는 아내의 조언대로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최적의 가방입니다.


4. 나만의 체력과 기분을 배려한 일정을 계획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아이들의 볼거리와 체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고, 와이프와 함께라면 적당히 고급스러우면서 청결한 숙소와 이동 수단, 그리고 무엇보다 캐리어 몇 개를 담아도 모자란 짐이 항상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여행은 다니다가 피곤하면 숙소에서 낮잠을 자거나 뒹굴다가 선선한 저녁이면 다시 어슬렁거리며 야경을 볼 수 있는 내 맘대로 일정 짜기가 가능한 것이 마치 미혼일 때 누렸던 자유가 떠올랐습니다.


로마에서의 2박 3일, 피렌체에서의 4박 5일(베니스 당일치기 포함), 런던에서 5박 6일 모두 느슨한 계획과 기상 및 취침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하면서 시차 때문에 새벽과 이른 오전에는 한국과 소통하면서 일까지 할 수 있어서 어느 누구도 유럽에 있는 줄 모르게 시공간의 자유까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중에서도 식품전문변호사로서 컨설팅과 자문 역할이 많은 특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운 좋게 출발 전날 수임한 일시적 자문 계약으로 5일 동안 여행 중에도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고스러움은 있었지만 여행경비를 제하고 남을 정도의 수익 때문에 마음도 편안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콜로세움에서 느껴지는 벅차오름, 잔잔하게 아름다운 피렌체의 야경, 4계절 날씨를 하루에 느낄 수 있는 런던의 하루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행복한 혼자만의 여행이었습니다.


상세한 여행기는 나중에 적겠습니다.







5. 내가 보고 느낀 후 돌아와서 시작한 것은


이렇게 2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체력보충도 밀린 업무처리도 중요했지만 유럽에서 가장 많이 본 것이 바티칸, 우피치 미술관, 베니스 미술관, 영국의 내셔날갤러리 등 그림이었고, 오디오가이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언어가 영어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공부와 미술사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여행 내내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성격상 생각을 하면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입니다.




지금까지 실행력하나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라 바로 질렀습니다. 그 유명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정말 두꺼워서 한 700페이지에 가깝습니다)를 주문했고, 자꾸 알고리즘 때문에 페이스북이랑 릴스에서 보이던 벼랑영어를 결제했습니다.






6.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라는


이번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가을에 다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허락을 받고 마일리지 항공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어와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남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숱한 경험을 통해 1개월 38만 원의 벼랑영어 수강료와 38,000원의 서양미술사 책값이 우리의 인생을 10배, 100배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 확실하니까요.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서 부부관계, 가족관계, 직장에서의 관계와 사회 속에서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행복하려면 우선 내가 가장 중요하고, 흔들림 없이 아니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내면을 키워 독립된 인간으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끼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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