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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Jan 04. 2021

#20. 여행 (7)

인천 근대문화거리를 거닐며

나는 여행을 망각을 위해 한다. 여행을 가기 전까지 얽혀있던 일상에 제대로 된 멈춤을 주고 그 멈춤으로 말미 암아 여유와 생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 휴식은 단지 일시정지가 아니라 새로움을 불어넣어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다. 


나는 독일에서 살며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건축 문화를 목격했다. 때로는 통일감 있게, 때로는 지역별로 특색을 갖춘 그들의 예스러운 건축양식은 문화재 대다수가 파괴된 한국인들에겐 매력적으로 보인다. 


나는 특히 근대건축물을 좋아한다. 학술적으로 특별히 아는 것은 없지만 한국의 근대건축물은 유독 유럽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마치, 유럽식 건축물이 당시 조선에 들어와 새로운 시도를 거친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근대건축물이 남아 있는 지역은 인천, 서울, 대구, 목포 등 몇 군데 되지 않으며, 그나마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 또한 다르다. 지자체마다 규정과 의지에 따라 보존상태와 관광효과가 천차만별이니 이 또한 정치의 영역에서 무관심한 탓이다. 


인천은 조선의 개항지였다. 당대에 가장 많은 서양문물이 유입되고 서양인들의 왕래가 잦아 그 문화가 공존했던 곳이다. 인천의 근대문화거리와 그 옆 차이나타운의 이질적인 문화의 만남이 묘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거닐며 사색했고, 사색하며 망각하고자 했다. 


차이나타운 초입 바로 옆에 동화마을이 조성돼 있었다. 건물이 이쁘게 치장돼 있었고, 벽화나 그림 그리고 조형물들이 가득했다. 어린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이 종종 보였다.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무리 유치한 동화라도 어른이 된 내가 다시 보니 그래도 싱그러운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동화는 동화인가 보다.


온통 빨갛다. 재미난 캐릭터도 많았다. 차이나타운은 역시 먹거리가 아니겠는가? 차이나타운과 상관없는 바로 옆 아파트도 기왓장을 올리고 빨간색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차이나타운에 처음 발을 디뎌보았다. 


중국 여각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오래전 지은 걸까 차이나타운을 조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은 건물일까? 



흰 짜장면을 먹고 본격적으로 근대건축물을 찾아 걸었다. 먼저 자유공원 아래에 위치한 제물포구락부에 다녀왔다. 이곳은 외교사절단이 모여 사교모임을 했던 곳이다. 고풍스러운 고동색 바와 각종 책들이 정갈하게 진열돼 있었다. 아쉽게도 커피는 먹지 못했다.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사람의 조선인과 조선풍경을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잘 묘사한 그림들이 특별전으로 열려 진열돼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 아마 이 공간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거나 문화강좌가 열렸을 것 같다.


구락부 한 곳에 공간이 분리돼 책들이 있었다. 위아래로 닫는 창문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참 조화롭다. 원색이 강렬한 그림과 함께 철학, 커피, 역사책들이 보인다. 


나도 아쉬운 마음에 책을 꺼내 잠시 공간을 즐기며 책을 읽었다. 확실히 책은 좋은 공간에서 읽어야 더 잘 읽힌다. 



아쉬웠다.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커피 한 잔 여유롭게 못하다니. 코로나가 애석하다. 



구락부를 나와 자유공원으로 잠시 올랐다. 월미도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보다 훨씬 경치가 좋았다. 탁 트인 공간에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돈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많은 노력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능력과 위치를 가져야 한다. 사람은 공간에 의해 마음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지는 것 같다.


공원에서 내려와 개항 당시 일본식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예전에 북해도 오르골로 유명한 곳에서 보았던 보존된 그 건축양식과 사뭇 비슷했다. 규모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인천에서 나름 애를 많이 써서 이곳의 거리를 걷기 좋게 만들었다. 다만, 이 건물들이 어떤 곳은 일반 건물에 겉에만 장식처럼 나무판자를 덧붙여 겉으로 보기에 당시의 근대건물처럼 보이게 해 놓은 것을 보았다. 으음. 판단이 되진 않았다.


확실히 교회나 성당은 유럽에서 흔히 보는 고딕이나 르네상스 형식의 건축물이 잘 보존된다. 전혀 다른 풍의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서있었다. 어딘지 부조화스럽지 않아 보이고 괜찮았다. 우리 삶도 그렇다. 가끔은 전혀 안 맞을 것 같은 사람들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당장 내가 익숙한 것,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어서 '어색한' 것도 이처럼 좋은 조화로 어우러질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근대문화거리의 유명한 건물들은 이렇게 잘 보존되어 훌륭한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곳의 많은 건물들이 당시 일제 수탈을 위한 일본 은행들이었다. 박물관 구석에는 당시 일본은행의 금고로 사용된 곳이라고 안내문도 있었다. 근대건물들은 특히 현대식 박물관과 잘 어울리는 듯하다. 상상해보라 만약 초가집이었다면 현대식 건물이 어울렸을까? 우열을 가리자고 꺼낸 생각은 아니다. 


바로 그 옆에는 이렇게 멋진 건물이 있었다. 안내판을 읽으니 지금은 무슨 여성 어쩌고 단체에서 사용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은 굳게 쇠사슬로 묶여있었고 내부에는 박스들이 뒹굴고 있었다. 과거에는 은행의 본사로도 사용됐다는 이 건물. 아무리 좋은 것도 안목이 없거나 의지가 없으면 그저 방치된 흉물일 뿐이다. 


지금 월미조탕이 있다면 대박이 날 것 같다.

다양한 건축물에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저렴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아치형 둥근 창과 투박한 직선형 구조 그리고 그 안에 강조된 띠모양의 구조물들의 조화가 참으로 기하학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지루하지 않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근대건축물의 장점이다. 화려하고 단시간 튀는 것보다 묵묵히 진득하게 살아가면서도 자기만의 특색을 간직하는 나의 사유와 결이 잘 맞다. 


근대 문화는 사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온다. 보존보다는 파괴가 많으며, 그나마 보존된 것 또한 아직까지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오래된 건물들이 실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긴다. 대불호텔도 과거 경영난으로 여러 번 주인이 바뀌다 1970년대 말 건물이 허물어졌다. 그런 건물을 인천에서 몇 년 전 다시 지어 복원을 했다. 안내문을 자세히 읽으니 당시 사람들이 호텔에서 사용했던 고가의 가구 및 집기들을 버리거나 땔감으로 써버렸단다. 


그렇지만 비관만 할 것은 아닌듯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창조돼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곳도 있었다. 한진 물류센터로 과거 사용이 됐던 보존된 근대건물들이 이렇게 공연장, 전시장, 단체 작업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 곳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건축물이 주는 통일감과 색감 그리고 군데군데 유리와 철조 구조물로 시각적 재미를 더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많은 어린이, 학생들이 왕래했을 것이다. 


근대 문학 박물관에 들어왔다. 이렇게 훌륭한 박물관이 무려 무료다. 방정환 특별전이 열려 어린이날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해맑게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나도 늘 내 마음과 행동이 동심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구조물 느낌이 한국의 퐁피듀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철조 구조물과 통풍구가 퐁피듀를 연상시켰다. 


이질적인 목재 지붕과 묘하게 잘 어울려 보였다.


다시 밖을 걸었다. 언젠가 내 집을 짓는다면 나는 건축가인 형에게 근대 건축물을 하나 지어달라고 할 것이다.


내 눈을 사로잡는 곳이 있었다. '철학실천연구소' 뭐하는 곳인지는 모른다. 다만 철학 강습, 친교 등을 하는 공간이 이토록 멋드러진 건물에 있다니... 부럽다. 나는 좋은 사람과 좋은 생각을 나누며 좋은 세상을 꿈꾸는 그런 좋은 삶을 수년간 그리고 있다. 독일에서 귀국한 뒤에도 코로나로 인해 제약이 많아 실천하지 못했다. 단지, 심각하고 복잡하게만 생각하는 것을 생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건전함을 바탕으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모든 생각과 행위를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그 자체로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구락부에서 본 내부와 여행 막바지 이곳에서 본 공간이 내게 부러움을 가지게 했다. 

마지막으로 맑은 하늘 아래 건물을 바라보며 짧은 도보 여행을 마쳤다. 너무 짧아 망각을 하기엔 무언가 아쉬웠지만, 답답함을 날리고 잠깐의 생각과 자극을 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늘 내 마음에 맞게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어쩌면 큰 행운이고, 그것만을 바라는 것 또한 지나친 오만이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자. 누군가를 판단할 때, 너무나 큰 만족감만을 좇을 때, 내 마음의 화를 다스리지 못할 때, 답답함을 느낄 때, 부족하지만 동심으로 돌아가 세상을 다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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