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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Nov 14. 2021

#22. 여행(9)

제주도, 자연과 정화 그리고 망각이 뛰노는




정말 모처럼 여행을 다녀왔다. 직장 탓에 며칠 느긋하게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아쉬움에 제주를 다녀왔다. 제주는 볼 것도, 먹을 것도, 가볼 곳도 많다. 이국적이고 자연에 파묻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더욱더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것 같다. 


떠나자. 여행은 망각을 위한 것이다. 익숙한 일상에서 탈피해 잠시 잊어가는 것,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알 수 없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 나는 여행이 가장 즐겁고 빠른 길이라 늘 생각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디지털에서 해방되는 여행을 컨셉으로 잡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의 디지털 의존도는 높았다. 일정도 내용도 모두 여유롭고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계획을 덜 세우려고 했다. 하루하루 여행을 하다 보니 아쉬운 마음에 열심히 계획도 짜게 됐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 실천을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라면, 사진을 덜 찍는 것이다. 사진의 순기능은 차치하고 부정적인 것은, 너무나 찍기 위한 시간이 되어 정작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멋진 풍경들을 찍은 사진들을 우리는 작은 스마트폰으로 다시 보던가? 찍은 사진이 1만 장이라면 아마 추억을 위해 꺼내보는 사진들은 수백 장이 채 되지 않을 것 같다. 


자연이 가득한 곳으로 가고자 했다. 제주는 그런 여행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니 좋은 곳이다. 상쾌했고, 공기가 맑았고, 날씨가 때론 흐려도 자연은 그 나름의 정취를 가지고 있다. 우리 삶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섭지코지를 올라가던 중 홀로 우뚝 서있는 건물을 찍었다. 옛 드라마 세트장이었던 것 같다. 큰 기대하지 않고 갔는데 산책로도 잘 돼있고 면적도 넓어 제법 긴 시간 즐겁게 걸었다. 뻥 뚫려야 제맛이다.


제주도 대부분이 그렇듯 현무암 기암괴석들이 해안가에 많다. 오랜 세월 침식이 된 모습이 그림 같았다.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였다. 어둑해지기 직전 약간의 불그스름한 일몰이 남아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성산일출봉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생각을 비웠다. 


바로 그 옆에 안도 타다오의 건물이 있었다. 1층에는 이쁜 카페가, 2층에는 고급진 레스토랑이 있었다. 제주도는 건축에 있어서도 한국에서 손에 꼽힌다. 아름다운 자연에 계획적으로 개발이 잘 된 케이스라 생각한다. 건축은 미관에도 관광에도 무척 중요하다. 저곳에서 다음에는 고급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 


성이시돌 목장에 갔다. 탁 트이고 푸른 곳을 주로 찾아다녔다. 내 마음도 다시 푸르게, 그리고 정갈하고 넓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생각 없이 목장에 갔는데 그 옆 성당에서 미사가 있었다. 목장은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목장, 공원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남다른 순례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고급진 십자가의 길을 숲 속에서 걸으며 예수의 수난을 다시금 생각했고, 묵주기도의 호수를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약 1주일 간의 여행 중에 기억에 많이 남는 코스 몇 개만 뽑으라면 나는 이 순례를 뽑을 것이다. 


나는 시골에 숙소를 잡았다.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한 곳. 하지만 조용한 곳을 찾았고, 우연히 숙소 주변에 해안도로가 아주 잘 돼 있음을 알았다. 매일 아침 저속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한 것이 무언가를 구경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음악을 들으며 바깥을 음미하고 바람을 쐬며 운전하는 것이 재미있다. 스트레스를 혼자 푸는 방법 중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서울에 다시 정착하면서 그러한 기회가 적어 아쉽다.


어느 맑은 날 찾은 아침 목장이다. 목장 치고는 관광지로 잘 만들어두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 젖소들이 뛰어노는 들판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넓고 맑아 정말 좋았다. 내가 머무르고 집에 가려고 하니 때마침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현무암 벽들이 제주에 참 많다. 하늘에서 봐도 이쁘고 가까이서 봐도 이쁘다. 소박함이 느껴진다. 나도 때로는 비움을 통해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비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내 눈으로 보는 것만 못했다. 말없이 풍경을 다시 바라보았다. 사진을 가급적 적게 찍으려다가도 못내 이렇게 사진에 손이 간다. 하지만 그 미련을 못 버린 덕에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여행을 회상하는 순기능도 있다.


SNS에서 제주 하면 무슨 해녀라면, 해물라면 하길래 나도 집 근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다 라면집을 발견해 한 그릇 했다. 흡사 해물을 먹기 위해 라면을 주문한 것 같다. 맛은 평범했다. 왜냐하면 그래 봐야 라면이니까. 주인장께서 정성스레 해물들을 넣어 요리를 해주셔서 남기지 않고 싹싹 먹었다.


일주일간 매일 지나가던 해안도로에서 성산일출봉을 찍었다. 아아.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광활한 바다와 세찬 바람이 아쉽다.


카페 투어를 좋아하는 나는 애월 카페거리를 가보았다. 주차도 어렵고 공간은 협소했으며 사람이 너무 많았다. 전용 주차장이 있는 한 카페에 들어섰는데, 생각지도 않게 이렇게 해안 산책로가 연결돼 있었다. 이때다 싶어 노을을 구경해보았다. 적당히 구름이 있어 구름 사이로 삐져나오는 황금빛 자태가 훨씬 더 운치 있어 보였다.


이 또한 카메라가 담을 수 없다. 연신 실제 모습과 사진을 비교했지만, 내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웅장하고 화려했다. 


마찬가지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강박이 들 정도로 나는 생각을 비우고 싶었다. 결국 생각은 내가 비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면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일몰이 가까운 서쪽으로 향했다. 에메랄드 바다 앞에 이런 황금빛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저 많은 먹구름 사이에서도 언제나 우리의 찬란한 빛은 내려온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자.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온몸으로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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