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인문계열 취준생의 고군분투 생존기 02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쓰기 시작한 건 10월이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달까. <27살이 세 달밖에 안 남았어! 28살이 되기 전에 취직해야 돼! 28살은 누가 봐도 백수란 말이 커버가 안 되잖아!>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때의 나는, 28살이 되기 전에는 직장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동안 알바든 대외활동이든 승률 90프로 이상을 자랑했으니까. 그렇다. 나는 사회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취직은 알바도 아니고, 대외활동도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이 이때까지 보고 들은 걸 쉽게 버리지는 못하는 지라, 잠시나마 관광가이드 교육까지 들었던 나는 여행사 쪽으로 취직의 가닥을 잡았다. 그러던 중 업무도, 연봉도 마음에 드는 공고를 발견한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곳은 여행 수필을 제출해야 하는 곳이었다. 유럽여행을 갔을 때 블로그에 매일 같이 하루를 기록했던 터라, 수필이야 형식만 조금 다듬으면 되는 상황. 나는 그렇게 운이 좋게도, 처음 지원한 곳에서 면접까지 보게 된다.
다대다 면접, 내 옆 사람은 여행작가 과정을 수료했다고 한다. 오, 그런 게 있었나 생각하던 차에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면접관의 말. <여행작가는 ㅇㅇ씨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정해진 사회의 정해진 삶의 인간, 나는 지독히도 성실해서 지독히 공허한 사람이었다.” 이 부분 무슨 생각으로 쓴 거예요?>
그리고 영어 면접이 바로 이어진다. 맙소사. 생각지도 못한 상황 면접이다. [고객들이 더 좋은 방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한다. 호텔 직원과 대화해보시오] 그런데 아뿔싸, 갑자기 available이 생각이 안 난다. 토익 875점, 오픽 IH 있어봤자 다 소용이 없다. 영어회화 울렁증 말기는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구인구직사이트에 자유 형식의 이력서를 올려놓았다. 회사가 요구하는 이력서에는 경력 칸만 존재할 뿐, 내가 살면서 쌓아온 대외활동이나 아르바이트를 써넣을 칸이 없었으니까. 그러던 중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직무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 사회적 게임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졸업하고 2년 동안 경력이 없네요. 뭐했어요?”
“시민단체 인턴도 하고, 디자인 툴도 좀 배우고, 가이드 교육도 받고, 여러 가지 분야에서 방황을 좀 했어요.”
“만약에 우리 회사가 자한당이랑 일하게 됐어요. 그럼 때려치울 거예요?”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과 일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어긋나지 않는 이상 열심히 업무에 임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자한당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아, 면접 망했구나 싶었다. 누가 사기업 면접 보러 가서는 절대 시민단체 얘기 꺼내지도 말랬는데. 그러나 면접 결과는 합격. 그나마 사회문제에 관해서는 주워들은 게 많으니 이후의 대화에서 술술 내 주장을 잘 얘기했기 때문이겠지. 운이 좋았던 건 질문하는 주제가 다 내가 아는 내용이었다는 거. 기초적으로 디자인 툴을 다룰 줄 아는 것도 한 몫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며칠의 고민 끝에 결국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제 한번 직무를 정하면 최소 몇 년은 그 직무 쪽으로 계속 일을 해야 할 텐데, 게임에 관심도 없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다른 기회는 있겠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양보하자.
정말 가고 싶던 여행사에 떨어진 후, 한 달 동안은 자소서도 쓰지 않고 그냥 우울하게 지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무턱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그때의 나는 서류에서 떨어지는 것,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은 취준생에게 자고 일어나는 것만큼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걸 몰랐다.
이후 한 크라우드 펀딩 회사에 지원하게 된다. 알바를 하며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도 리워드형 펀딩에는 꾸준히 소액투자를 했던 터라. 막연히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재미로 덤비는 사람을 붙여준다면 회사가 왜 회사겠는가. 재미로 하는 거면 내가 돈을 내야지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ㅇㅇ씨에게 세상의 모든 직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럼 뭐할 거예요?”
그래도 면접이니까. 나는 직무와 관련된 얘기를 한참이나 떠들어댔다. PM으로서 어쩌고저쩌고.
“음... 그러면 좀 실망인데? 나는 말레이시아 가서 대사 할 건데.”
이 부분에서 솔직히 좀 울컥했다. 친구랑 얘기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솔직히 얘기를 해요. 모든 직업을 할 수 있다면 내 꿈은 건물주예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사장.
2시간이나 이어진 면접 끝에 결과는 불합격.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은 아직까지도 토씨 하나까지 기억에 남는다. <ㅇㅇ씨는 아직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사람 같아요. 활동이나 아르바이트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히 적어주셔서 사실은 좀 궁금했었거든요. 어떤 사람인지.>
작은 인터넷 언론사의 사무직에 지원을 했다. 나는 명예욕도, 재물욕도, 권력욕도 없는 사람이다. 어떤 회사든 빨리 들어가서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게 없다면 그냥 아무거나 하자.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흘러가다 보면 어떻게든 먹고살겠지.
“졸업하고 2년 동안 경력이 없는데 뭐했어요?”
단골 질문 또 등장이다. 머릿속에서는 경보가 울리기 시작한다. 안돼. 사실대로 말하면.
“잠깐씩 아르바이트하면서 여행 다녔어요.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서 방황을 좀 했어요.”
결국 절반은 사실을 말했다.
“뭐 장점에 끈기가 있다 성실하다 그런거 적어놨는데, 이력서 보니까 동의를 못하겠는데? 그럼 우리 회사도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여행 갈 거예요?”
말문이 막힌다. 여행 다닐 만큼 다닌 것 같고요. 이젠 나이 먹어서 때려치우려고 해도 못 때려치워요. 2주 안에 연락 준다던 회사는 결국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또다시 원점이다. 난 네 달 동안 열다섯 곳에 서류를 냈고, 네 곳에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직무조차 정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위의 네 곳만 해도 중구난방이 아닌가. 나는 취직에는 ‘간절’했지만 직무에는 간절하지 ‘않았다’. 내가 이 일에 열정이 있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목적이 단지 취직이었으니 그 어떤 회사가 날 반겼으랴.
취준에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직무 선택이라는데, 들쭉날쭉인 직무 덕분에 지원할 때마다 자소서를 처음부터 다시 쓰는 소모전을 겪어야 했고, 나조차도 진이 빠졌다.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온갖 직무로 자소서를 열몇 개 쓸게 아니라, 그 시간에 직무를 두세 개로 확실히 정해서 대여섯 개 써보는 게 오히려 나에겐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시작이다. 직무 선택. 하고 싶은 게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