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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Feb 15. 2023

[마음들] 부크크 자가 출판을 했습니다.

별 거 아닌 책인데, 너무 많은 마음들을 만났다

마음들


없는 것 같다가

나중에 알려진 사실 같은


보이지 않다가

불쑥 나타나 몸을 데워주는


아닌 줄 알았는데 맞았고

맞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던


사실은 쭉 좋아해 왔다고

쫓기듯 숨기던 무의식을 발췌해

남의 가슴 한가운데 꽂아두는


마음들


마음이란 말이

마음에서 나오게 하는

당신의 마음들


마음먹고 했다면 오래 걸릴 일이었다. 내 책을 만드는 것. 왜냐하면 삼십대 직장인이 퇴근 후 취미로 삼기에는 꽤나 부담이 될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조각글을 쓰는 것이야 어렵지 않다만 쓸만한 원고만을 일정 분량 이상 모으겠다는 목표를 잡았다면 분명 진작 제풀에 쓰러졌을 거다. 어릴 적 몰두했던 팬픽 쓰기를 단 한 번도 완결 내지 못해 그나마 따라와 주던 독자들을 매번 실망시켰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직장인의 의지박약이라기보다 무언가를 완성시킨다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움이 가장 크지 않은가 싶다.


자가출판 부크크 플랫폼을 통해 책을 만들었다. 2023년 1월쯤 바쁘지 않은 시기에 브런치에 써둔 글 중 쓸만한 것들을 모아 원고로 묶었다. 나름 메인노출도 되고 5천 뷰나 달성한 브런치북을 냉큼 없애버렸다. 브런치 제휴 출판 시스템이긴 하나 매거진으로 묶인 책만 원고로 한 번에 다운로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자꾸만 미루면 이 한 걸음이 너무 늦어질까 봐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인디자인을 다루는 디자이너 지인이 몇 있어서 표지나 내지 편집을 부탁할까 하다가 급한 성미를 어찌하지 못하고  전부 직접 해치워버리기로 했다. 업무 틈틈이 원고 내 사적인 이야기와 남들이 불편해할 수 있는 내용의 단락들은 지워버리고 오탈자를 봤다. 연차를 내고 하루종일 포토샵을 더듬거리며 표지 PDF도 만들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20년도 넘게 품었는데, 무작정 추진한 책을 받아 보는 데에는 20일이 걸렸다. 꿈은 추진력 있는 자가 이루는 법이다.


내 이름이 버젓이 적힌 책을 주문할 수 있게 되자마자 SNS며 주변인이며 눈에 띄는 곳이면 어디든 자랑을 하고 다녔다. 실은 먼저 확인용으로 한 권을 구매해 검수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생략했다(...). 나중에야 알고서 내지 원고를 고치긴 했지만 그 덕에 초판에는 쪽 바꿈이 안된 페이지가 있었다. 세상이 좋아지니 이렇게 불친절한 인간도 작가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어쨌든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사이 구매링크가 노출되어 지인들이 책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집에는 스무 권이 넘게 보냈는데, 가족들이 제 값을 쳐서 용돈을 보내줬다. 그 사이 축하의 말을 정말 많이도 받았다. 자주 내 글을 읽어주는 몇몇이 사줄 거라곤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마음들이 의외의 곳에서 튀어 나오면서 불쑥불쑥 감동의 순간이 찾아왔다. 호들갑 떨진 않았지만 조용히 나의 행보를 지켜봐주던 이, 가끔씩만 연락 하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이, 그냥 잊고 말아 버릴 수도 있는 짧았던 인연의 사람들까지 책을 구매해서 읽고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야밤에 울어서 내일 눈이 부을 것 같다는 친구, 여러 권을 사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했다는 사람, 자기 친구들 반응을 실시간으로 캡쳐해 보내주는 막내, 자기 얘기가 얼마나 많을 지 나보다 더 신이 난 예랑이와 나는 알지도 못하는 당신 회사 직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호들갑 떠는 아빠를 보며 반성했다. 이럴 거면 조금 더 손을 볼 걸, 표지도 전문가에게 맡기고 목차도 디자인 할걸. 이렇게 많은 마음들이 내 가슴에 요동칠 걸 알았으면 처음부터 더 예쁜 말만 쓸걸.


판매용으로 만든 것도 아니지만 판매부수는 동네방네 소문을 냈을 때 반짝 팔리고 말아서 아직 두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이번 계기로 얻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록해 둔다. 앞으로 책을 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무적으로 느낀 바도 한둘이 아니지만 한 사람의 무게에 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나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보다 가까이,   혹은 멀지만 항상 응원해 주고 예뻐해 주는 마음들이 있었구나. 그리고 알량한 나의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도구로 혹은 다시 마음으로 쓰일 수도 있구나,하고.


실은 너무 바쁜 때라 그때의 벅찬 감동이 한참은 가라앉은 뒤에 이 글을 쓴다. 아무래도 좋은 상사가 되기는 글렀다는 자조를 한 날에, 잠깐 같이 일했던 전 후임의 애정 가득한 메시지를 받았을 땐 눈물이 그득히 차오르기도 했다. 책을 받은 날 단숨에 완독하고 에피소드 사이사이 드러난 아빠의 건강을 제일 묻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샀다고 생색도 안 해놓고 갑자기 책 이야기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날들을 며칠 보내며, 이 기분을 모아서는 꼭 '마음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세상이 따뜻한 줄도 모르고 여태 지내왔는지. 그때 듬뿍 받았던 진심 어린 마음들을 꼭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오늘은 브런치 작가소개에 내가 만든 책이 추가가 됐다.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이제 떼었으니 조금씩 걸어보기로 한다. 내게 온 마음들은 너무 커서 무한동력이 된다.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꼭 더 나은 글쓰기 인간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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