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추어리 Mar 19. 2023

아파트

어차피 지긋할 땅이 멀어져서

놀다가 자다가 울컥 그리워져서

아파트 맨 위층에 들여놓았네

다 시든 레위시아와 유칼립투스 나무를


내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물과 바람과 자갈을 주고

볕이 가장 잘 드는 베란다 곁을 주고

선글라스를 끼고 오래도록 보았네

모처럼 차분하게

오후의 해를 보았네


매일같이 발목을 끌어당기는

중력 그만큼 땅이 그리워도, 우리


죽지 않을 만큼 볕을 쬐고 물을 마시고 더우면 바람도 쐬고

되도록이면 살아는 있자고, 우리


내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만 살아지면 좋겠네

돌보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아무나 가늠하는

넘의 인생 키재기는 뒤로 하고


그저 그저

어디서든 말쑥하게 자라나는

한 포기 아름다움 되어 살면 좋겠네



아파트에 사는 게 대수라고 이런 글을 써놓았지요? 고층 그것도 탑층에 처음 살아보는 심신미약자에게는 나름의 고충이 있었더랍니다. 오늘은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가보는 실험을 해보았어요. 상가로 이어지는 3층까지는 3분 14초 정도가 걸렸습니다.

이게 중요한 얘긴 아니고, 집에 식물을 들이면서 마음도 많이 편해지고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선물 받은 여인초를 시작으로 몇 가지 화분을 들였습니다. 다육이인줄도 모르고 꽃만 보고 냅다 들여온 레위시아는 식물을 살리다가 꽃을 홀라당 날려먹었습니다. 그래도 흙도 사고 토분도 사고 각종 영양제와 도구를 사며 제법 식린이의 자세를 갖췄습니다.


아침이면 화분을 옮겨둡니다. 각자 필요한 만큼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자리로요. 이번 주말엔 고요히 식 멍을 때리며 물을 언제쯤 줄까, 수형을 잡아줘 볼까, 가지치기를 해줘 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볕이 드는 곳에 빈백을 놓고 제 몸도 뉘어 햇볕을 좀 주었습니다.


유칼립투스가 그렇게 키우기 예민한 아이라던데. 지랄초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다만 저도 한 지랄 맞은 사람인지라 스스로를 돌본다 생각하고 들였더랬죠. 해를 한번 쫙 쬐어주고 샤워 한번 하고 나니 사랑받는 식물이 된 것처럼 쾌청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이곳에서 살아갈 날들이 온통 차분하고 아름다운 일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인디언의 마음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