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추어리 Sep 22. 2023

[일종의 모독] 떠난 상사와 떠날 후임, 우리를 보내며

우리가 영원할 수 없다면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일종의 모독


깐 호두처럼

매일 알알이 영근 일과에

다투듯 사탕발린 말을

몇 마디씩 보태어

그러면 아무리 씁쓸한 맛이 나도

특별한 재료가 될 수 있어


우리라는 이름의 파이지에

나누었던 대화주제를 넣고 굽자

그리고 그걸 쪼개어 먹으면서

또다시 얘기하는 거야

한 알 한 알의 사건을

잊지 않게 되새김질하는 거야


함께일 때는 몰랐지


약속이나 한 듯이

언제나 디저트 마지막 조각이 덩그러니 남는 것은

깨지고 굳어진 부스러기만이 그 조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라는 이름에게는 모독이었다는 걸


삶의 파이 그 한 조각이

굳어가며 얘기하네

우리는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숱하게 남은 마지막 한 입

그 입들이 모여서 말하네

순간의 달콤함 그 끝에

우리를 모독해선 안된다고



휴직계를 낸 사유 중에 자꾸만 마음이 순두부처럼 연약해진 것이 한몫했다. 아끼던 후임 하나가 퇴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별을 말하는 그 순간이 지난 우리의 시간을 나이프로 홱 베어버리듯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이렇게 써 두면 그녀를 모독한 게 아닌지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우리로서 보내온 지난날들을 과거로 만들어버리는 이런 사건도 있다면, 이런 글도 나중엔 하하 호호 웃으며 함께 읽어보는 그런 날도 있을 테지.


이별에 취약한 나의 심성이 80% 정도 관여를 했다면 나머지 20%는 상대방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세상에 영원한 우리가 어디에 있으랴. 부부사이에도 남남의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직장에서 과도한 정을 품었다는 것 자체가 방심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좀 더 다정하고 긴 대화로 나를 납득시켜 주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그간 나누었던 모든 대화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투명한 창자에 가득 채워 넣은 재료가 설사처럼 허무하게 쏟아지지 않게 잘 묶어서 예쁜 소시지로나마 남게. 두고두고 말렸다가 다시 만났을 때 한 조각씩 베어 먹으며 추억을 말할 수 있게.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알음알음 지나갈 수 있게 놔두고, 늘 그랬던 것처럼 재미나고 달콤한, 적어도 변명으로 나를 떠나갔으면 했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나와 사이가 퍽 나빴던 동료가 퇴사 후 나와 우리 팀에의 불만을 가득 적어 책을 내고, 독립 서점을 꾸리고, 작가로서 강연을 다닌다고 했다. 잊을만하면 그 책을 발견한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전 동료들이 이따금씩 캡쳐본을 보낸다. 그녀에게 직접 연락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하지 못하는 거겠지. 그녀를 미워하는 마음과 그리워하는 마음이 동시에 있다. 그녀와의 마지막 파이는 아마 그쪽 마음속에 굳어서 남아있을 테다. 우리는 특별한 점심밥을 그렇게도 많이 먹었다. 라이프스타일이 안 맞아도 그녀가 매일 오전 제안하는 먼 거리의 맛집을 어떻게든 걸어가서 같이 먹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좁혀질 수 없는, 너무 다른 서로의 손을 잡아보려고 애쓰는 대화를 많이도 했었다. 울면서 싸우던 적도 있었지. 나는 그게 좋아해서 가능한 거라고 느꼈다. 그렇게 셀 수 없이 일상적이고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결론은 식어빠진 남은 디저트처럼, 더는 매력도 없고 처치곤란인 것으로 기억된 인연이다.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흘려보내면 좋았을 걸. 그래도 같은 글 쓰는 이로써 얼마나 마음에 사무쳤으면 그걸 숙성하고 가공하여 저만치까지 앞으로 나아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해자는 기억을 못 하는 법이라면 아무래도 나는 그 편이겠다.


지금은 수년이 지났으니 덤덤하게 이렇게 말은 해도, 내가 그녀의 책에 언급된 사건은 그 당시 우리의 퍽 참신한 술안줏감이 되어주었다. 모두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래, 사람 일은 한쪽 말만 들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나는 따라잡을 수도 없는) 자본과 영향력을 발휘해서까지 그녀의 주장만을 말한다고. 그래, 이건 모독이야. 나에 대해서도, 우리에 대해서도.


다시 오늘로 돌아와서, “나에겐 더 큰 회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한 후임의 이야기를 적는다. 상심해하는 나에게 대표가 전화해서 그 아이가 큰 회사를 꿈꿀 수밖에 없다며 늘어놓은 주변 환경에 대한 얘기를 떠올린다. 네가 언니니까 참으라는 그 말에 ”그럼 남은 사람들은 큰 회사에 갈 필요도 없는 환경의 바보가 되는 것 아닌가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대표도 나보다 언니이기에 참는다.


나는 이번에도 후임이 우리의 좋았던 지난날을 모독한다고 느낀다. 동시에 나는 지금 너를 모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안되지만 너는 모르는 불특정다수에게 우리의 마지막 남은 디저트 조각을 소개하고 있으니. 내가 잊고 싶은 그 기억처럼. 아무래도 좋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던 것처럼 아쉬운 소리만 그득그득 써대고 있으니.


우리라는 건 영원할 수 없다,라는 주제로 호두파이 레시피를 검색해서 시를 쓰는데 웬일인지 모독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이별은 인정하마. 다만 결코 우리는 서로를 모독하지 않고는 갈라질 수 없는 걸까.


눈물콧물 짜며 보낸 상사가 통 전화를 받지 않는 것에 더 이상 상심하지 않기로 했다. 당신을 그렇게 미워했았는데 지금 돌아보니 이해되는 게 너무나 많아서, 그래도 당신이 영 틀렸던 건 아니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그녀가 선택한 방식은 서로를 모독하지 않고 깔끔하게 서로에게서 없어져버리는 것. 이제와 잘잘못 따질 일 없이 나빴던 일도 미화되도록 그대로 두는 것. 헤어지고 나서도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용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도 없게, 남은 잔부스러기 뒤적거리며 추할 일 없게 그릇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 어제는 대화가 그렇게 하고 싶고 슬펐는데, 오늘은 고맙다. 이제 상사도 놓아드려야겠다. 이렇게 미련 많은 과거의 후임과 그때의 우리는 잊고 더 맛있는 그릇을 찾으러 가라고.


나의 후임에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연두부 같은 마음에 상처가 나서 휴직을 하는 바람에 그녀를 볼 날이 3일도 채 되지 않는다. 남은 3일도 회사에서는 쉬라고 했지만 부득불 출근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얼굴은 봐야지요, 인수인계받아야 할 것도 있고요.라고는 했지만 우리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해야 할지는...


먼저 간 상사를 끝없이 생각한다. 그냥 웃으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나 하면서, 필요한 말과 필요한 농담만 하면서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보내줘야지. 중요한 얘기는 하나도 하지 말아야지. 분명 삼보일배를 하는 마음이 필요했을 테다. 나는 마지막까지 너의 퇴사 통보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말해주지 않을 거고, 보내는 내 마음이 어떠한지에 대해 하나도 말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그녀가 아주 나중에 나를 ‘남은 디저트 조각을 굳혀가는 사람’이 아니라 ’깨끗하게 접시를 치워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사적인 얘기를 쓰는 건 최대한 지양하고 싶었으나, 나만 재미있는 이런 글을 써서 무안하다.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 먹다 남은 숱한 마지막 디저트 한 조각들을 떠올린다. 우리가 영원할 수 없다면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아무리 예쁜 카페라도 운영이 되니까. 슬프다고 멈추지 말고, 더러워도 내 손으로 박박 닦아내자고. 누가 들어오고 나가도 내 마음의 공간은 스스로 가꿔내는 힘을 기르자, 고.

작가의 이전글 산타클로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