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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 Jan 27. 2021

연말정산의 사용자 경험

연말정산 솔루션은 왜 드라마틱하게 개선되지 못할까?

연말정산 시즌이 돌아왔다.


우리가 시즌이라고 표현할 만큼, 연말정산은 대부분의 국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다들 한두 번씩은 연말정산에 대해 궁금해하고, 친구들은 얼마나 돌려받고 토해내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많이 토해내는 친구들은 세금 너무 많이 떼어간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연말정산 솔루션의 사용자 경험은 나름대로 개선되어 왔다. 10여 년간 근로자 입장에서 연말정산을 해오면서 "오 이런 것도 개선됐네?" 하는 부분이 제법 보였다. 올해 연말정산을 하면서 안경 구입 항목을 전산을 통해 확인하고 기입할 수 있게 된 부분이 그런 항목이다. (작년만 해도 안경 구입처에 가서 구매 내역을 확인하고, 서류를 발급하고 첨부하는 등 꽤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정산 솔루션은 아직 나이스 하지 않다. 올해도 지인들의 카톡 대화방에는 주택차입금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의료비는 어떻게 몰아서 쓰는 건지, 부양가족은 어떤 조건인지 등등에 대한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각종 항목에 어떤 증빙서류가 필요하고 어떻게 발급받는지 모르는 경우도 꽤 있다. 그리고 잘 몰라서 실제로는 받을 수 있었던 세금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도 발생하곤 했다.


'그러게 잘 알아보고 처리했어야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연말정산 당사자의 책임이라고 몰아버리기엔 좀 가혹한 부분이 있다. 연말정산은 올해 내가 내야 할 세금을 '추정'해서 미리 가져간 뒤, 실제 세금액을 결정해서 차액을 돌려주거나 추가로 징수하는 개념이다. 즉, 연말정산 당사자는 1년 동안 발생한 근로/소비/기타 세금에 관련된 행위를 기반으로 세금액을 돌려받거나 필요한 만큼만 추가 납부할 권리가 있고, 그 돈은 원래 연말정산 당사자의 것이다.


나는 이 간극을 연말정산 솔루션(여기서 솔루션은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Q/A 센터 등 전반적일 처리 프로세스를 뜻한다.)이 메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의미에서 아직 연말정산 솔루션은 나이스 하지 않다. "아니 내가 받을 돈인데, 그냥 버튼 한번 클릭하면 내가 받을 돈 딱 정확하게 나와줘야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늘 품게 된다. 그리고 올해 처음 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연말정산 솔루션은 제공자(정부)와 고객(납세자) 양쪽에서 모두 B2B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 부분이 고객 측면에서 질적인 개선을 촉발시키지 못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제공자 측면을 생각해보자.


제공자는 아마도 어떤 산하기관 또는 업체에게 연말정산 솔루션 개선을 의뢰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공자의 요구사항은 고객의 사용성 개선보다는 연말정산 프로세스의 생산성 개선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 것이다. 고객의 사용성 개선을 위한 기능이나 솔루션을 도입하면 도입 초기에 꽤 많은 혼란과 사이드 이펙트가 발생할 것이고 이 부분은 해당 부분에 대한 문의나 불만사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부분은 B2B 솔루션 제공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지점이다.


고객 측면에서도 연말정산 솔루션은 대안이 존재하지 않은 '숙제'같은 과업이다. 불편함을 인지하고 불평을 할 수 있을지언정, 연말정산 솔루션을 안 해버 리거나 다른 솔루션으로 갈아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냥 현재의 솔루션내에서 이 일을 최대한 본인이 알아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B2C 솔루션의 고객 경험은 왜 지속적으로 개선되는가? 그 본질을 한마디 정의하면 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연말정산 솔루션 고객의 개선 요구는 제공자에게 반영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B2B적 구조에서 고객 측면의 사용자 경험 개선은 불가능한가? 어렵지만 제공자가 고객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이드 이펙트를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사용경험을 개선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좋은 B2B UX 개선의 핵심이다.


올해도 나는 연말정산을 마쳤다. 그리고 아마 내년, 내후년에도 연말정산을 할 것이다. 몇 년 뒤에는 연말정산 시즌에 내가 해야 하는 '숙제'의 부담과 결과가 좀 더 명확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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