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씁니다 Aug 24. 2021

#14. 퇴사하면 떠나요

무조건 무조건이야

저때 안 갔으면 어떡할 뻔했어?

세상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어?

언제 다시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을까?

저때 가길 정말 잘했다!

역시 갈 수 있을 때 가야 돼!


딸과 떠났던 배낭여행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 또는 생각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 떡하니 붙어 있는 여행 사진을 보고 하는 말이다. 2018년 퇴사 후 딸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와서 딸이 만든 것이다. 이후 새로운 사진이 업데이트되지 못하고 여기에 머물러 있다.


나는 여행을 신봉하다시피 하는 사람으로서 비행기 편도 티켓을 끊을 돈만 생기만 늘 떠날 궁리를 하고 실행에 옮기곤 했다. 남편이 집 짓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때도 나는 반대했는데, 반대하는 제1 논리가 집 지을 돈 있으면 여행 가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떠나고 싶은 나의 욕망보다 정착하고 싶은 남편의 욕망이 승리했고, 어쩌다 집을 지었다. 집 짓느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대느라 통장 잔고가 바닥난 상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 상황만 아니었다면 아마 땡빚을 내서라도 멀리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돈 모을 궁리는 안 하고 여행 다니며 길거리에 돈을 뿌리고 다닐 때 한 걱정을 늘어놓다가 체념한 우리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그래 다닐 수 있을 때 실컷 다녀라, 나중에 결혼하고 애 낳고 하면 못 다닌다.


근데 결혼하고 애 낳고도 매년 여행을 다니니까, 어머니가 그러셨다.


그래 지금 실컷 다녀라.  있어도 나중에 늙고 다리 아프면  간다.


엄마가 뜯어말려도 가볍게 무시하고 나는 떠났겠지만, 이제 공히 엄마도 허락하셨겠다, 실컷 쏘다니는 일만 남았다. 여름휴가 때 길어야 일주일이었지만 이제 퇴사도 했겠다, 딸이 제법 대화가 통할만큼 많이 컸겠다, 장기 여행하기 딱 좋은 때인데 이 놈의 바이러스에 꼼짝을 못 하고 있다.


지독한 보릿고개에도 나에겐 꺼내먹을 옥수수가 있다. 냉동실에 얼려둔 옥수수를 하나씩 꺼내 해동시켜 먹는 맛이랄까. 지금 코로나로 집콕하면서도 머리로는 세계를 떠돌고 있다. 그동안 실컷 다녔던 여행이 두고두고 파먹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이번 팬데믹 상황에 다시 한번 얻은 교훈은 떠날 수 있을 때 무조건 떠나야 한다. 퇴사하면 퇴직금 들고 무조건 떠나야 한다. 다음은 없다. 무조건 무조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퇴사 후 아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