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밴드 공연에서 라이브 포크송 카페까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콘서트를 가봤다. 아티스트의 이름은 Parcels. 소포라는 뜻을 가진 이 밴드는 호주 바닷가에서 자랐는지, 결성이 되었는지, 아무튼 호주가 고향인 다섯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고 지금은 아시아 투어 중이고 서울을 방문했다. 내 생각보다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다. 그것과 상관없게 난 파슬스의 음악을 사랑한다. 그들이 독자적으로 론칭한 소통 창구에도 적극적으로 글을 썼다. 설레는 마음에 그들이 파는 티셔츠 두 장, 후드티 하나, 양말도 샀다. 공연 당일 오전에 소박하게 진행되는 사인회에 당첨되어 그들에게 내가 입고 있던 밴드의 옷을 보여줬다. 담담하게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고 사인을 받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화는 내가 신혼여행으로 호주를 작년에 다녀왔고 너희의 고향을 가봤는데 환상적이라고 하니 정말이냐고 놀라워한 것. 어디서 만났냐고 물어서 틴더로 알게 되어 결혼했다고 한 것. 내게 넌 짝을 찾았구나!라고 대답했던 한 멤버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이날 나는 러시아 사람 다섯 명을 알게 되었고, 그중 이름이 똑같은 두 명의 샤샤와 각별히 친해졌다. 우리는 사인회에서 서로 인기척만 느끼다, 내가 그들이 러시아에서 왔다는 대화를 엿듣고 나가는 길에 말을 걸었다. 대학교 때 교양 수업으로 러시아를 배웠던지라 러시아에서 왔느냐고, 러시아어를 배웠다고 용기 내서 스몰톡을 건넸다. 공연장에서 다시 마주쳤고 같이 공연을 봤다. 우리는 뭔가 잘 맞았고, 공연을 보던 도중 뒤에 러시아인 세 명이 아주 우연하게도 있는 걸 알아챘다. 정확히는 샤샤들이 알아챘다. 그렇게 총 다섯 명의 러시아인과 한국인 한 명은 파슬스 공연을 방방 뛰면서 즐겼다.
나중에 나이를 묻길래 서른 하나라고 말해줬는데, 내가 첫 공연이라고 한 대다가 피부가 좋아서 열아홉 인 줄 알았더란다. 스킨케어를 뭘 쓰냐고 하길래 세타필을 쓴다고 했다. 자기 나라 남자들은 비누로 얼굴을 막 씻고 스킨케어를 안 해서 피부가 안 좋다고 피유, 하는 샤샤의 얼굴이 기억난다.
우리는 이어서 명동의 어느 술집을 즉흥으로 찾아갔다. 내게 로컬이라 술집을 잘 알지 않느냐 했지만 난 밖에서 술을 거의 즐기지 않고, 특히나 술집 자체를 잘 모르고 명동은 더 모른다. 섬이라는 곳을 갔다. 영업을 새벽까지 하고 느낌이 좋아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린 큰 계기를 마주했다.
그곳은 테이블 세 개, 포크송 라이브를 주인장이 들려주는 가게였다. 손님들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른다. 예전 노래를 부른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이 주인아저씨의 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잘 찾아온 게 맞는지 그때까진 아리송했다. 그러나 한 시간 후 샤샤와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두 명의 샤샤 중 포니테일 샤샤는 감수성이 여리다. 나와 비슷하다. 너도 센티멘탈하고 나도 센티멘탈하다고 서로 닮은 인간이라는 걸 알았다.
머리를 묶은 샤샤는 지내는 순간마다 공허하고 감동적이고 슬프고 기쁘고 허무하고 답답하고 여러 감정이 이는 사람이다. 나는 서로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로 대화했지만 그녀의 속을 알아챘다. 나 또한 그러하기에. 음악이 주는 감동이 안식이 되고 무엇이 우리를 이끌었는지 가장 사랑하는 서로의 아티스트를 만난 뒤 또다시 놀라운 이 섬에 당도한 것이 우리를 울렸다. 나는 노고지리의 찻잔을 신청했다. 주인아저씨 목소리에 맞추어 따라 불렀다. 거기 계셨던 손님들은 어찌 이런 노래를 아느냐 물었다. 원래 예전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찻잔...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이어서는 러시아 음악 퍼레이드였다. 빅토르 최라고, 한국계 러시아인이 러시아에서 역사적인 인물이란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원한 락스타, 국민 가수 격이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빅토르 최 노래에 맞추어 춤을 췄던가... 기억이 흐릿하지만 덩실 거렸다. 러시아 음악 퍼레이드 후엔 유얼 마이 댄싱 퀸이 틀어졌다. 옆에 있던 다른 젊은 손님들(우리보다는 나이가 있었지만 거기선 젊은 축)과 얼싸 좋구나 일어나서 춤을 췄다. 분위기가 과열 됐는지 산새 같은 목소리로 소프라노 톤의 노래를 불러주신 단골손님이 우릴 진정시켰다. 우린 슬펐다 기뻤다 하면서 그렇게 춤을 췄다.
자리를 마치고 나니 새벽 세시. 나는 화요가 그렇게 센 술인지 몰랐다. 두 샤샤가 괜찮겠냐고 했는데, 마시다 보니 셋 이서 네 병을 먹었고 난 어제까지 술병이 났다. 해장을 세 번은 했다. 새벽 네시쯤 집에 도착했고 나은이는 내 인기척을 듣고 잠에서 깨 즐거웠는지 물어주었다. 그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답하고 몸을 씻고 나은이 옆에서 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