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먼치에 있던 사람의 소천
나와 이름이 비슷한 자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코로나 시국에 세상에 나온 비대면 대화 어플이었다. 예전 토크온, 스카이프, 다중 연결 통화, 이미 나왔거나 존재하는 플랫폼들과 기능은 비슷한데 거기서는 왜인지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당시 센세이션 했다. 유명한 대학 교수, 경영자, 연예인이 독자적인 방을 개설하고 평소 서로 접하기 힘든 일상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주목적이 이것은 아니고 삼삼오오 방을 만들어서 떠드는 재미가 좋았다. 나는 그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다. 이전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었고 굉장히 자주 싸웠다. 갈등에서 도망치는 기분으로 직장에 나가있는 여자친구가 없는 사이 클럽하우스를 틀었고 도무지 무슨 주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쾌하고 낭만적이고 진지할 땐 또 깊은 대화를 하는 그룹을 발견했었다. 그중 바로 그녀가 있었다. 나와 이름이 비슷했던 이 사람.
그 사람은 당시에 내 인스타를 보고는 여자친구가 있냐고 했다. 있다고 했다. 머쓱한 웃음이 스피커 너머로 느껴졌다. 그 사람이 입에 달고 살던 소리가 오히려 좋아였다. 당시 유행어였는데 이병건, 침착맨으로 알려진 바로 그 크리에이터가 곤란한 일이 생겨도 이면엔 장점이 있으므로 오히려 좋다고 상황을 달리 인식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하는 문구였다. 뭐만 하면 오히려 좋다고 해서 나는 그게 너무 웃겼고 이 사람과 둘만 대화한 적도 있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했다. 나도 방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어서 방 이름을, 말하기 전 두 번 생각하셨나요?, 라고 해서 사람들을 기다렸는데 그곳에 그녀가 들어왔다. 방을 만들기 전에 내가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고 말하면 실수한 일이 적다고 한 것을 그녀는 기억했는지 들어와서 깔깔깔... 웃었던가... 웃긴 사람이라고 했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짓궂은 농담을 하자 두 번 생각하셨나요? 라고 그에게 물었다. 난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흥미가 시들해져 가는 클럽하우스 너머의 목소리로만 접했고, 사람들의 대면 만남이 자유로워지면서 대화는 사라졌고, 인스타그램을 서로 팔로우하기에 어떤 인생을 사는지 서로 주고받고만 지냈다.
그 그룹의 일원이자 그녀의 친구였던 사람이 있다. 이름은 김아멜. 나는 이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제빵에 진심이고 성심을 다하고 자기 베이커리를 차렸으며 생생한 이 젊음의 파도를 타는 중이라 흔들리고 고민이 많은 사람. 나는 그녀가 연남동에 제과점을 오픈했을 때 소리 없이 찾아가서 인사했다. 우리는 목소리와 사진으로만 알다가 처음 만났다. 난 그사이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이 사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지, 알아보지 못하더니 내 긴 머리가 특징적이었는지 화들짝 놀라더니 백윤 씨!라고 외쳤다. 나는 그녀가 남자친구와 같이 있길래 괜히 찔리는 마음에 저 유부남입니다, 나중에는 괜히 얘기했나 싶은 소심한 티엠아이를 고백했다. 그게 오늘로부터 반년 전쯤이었다. 일 년 전이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늘은 낮에 시간이 남아서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오랜만에 김아멜씨의 빵집을 방문할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직업인 아이리쉬 펍 근무는 저녁 일곱 시부터였고 다섯 시까진 여유가 있었다. 나는 도시 속 빵 냄새가 솔솔 풍기는 그녀의 신비로운 빵집의 문을 열었다. 난 오른손을 빤짝 들어 흔들었다. 당황하는 그녀의 눈빛.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알아볼 것이라 확신하고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백윤 씨! 웃음 터트리며 김아멜은 나를 반겼다.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 업에 진심이었다. 이런저런 해결해야 하는 점들도 많고, 하다 보니 자기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잘하고 싶다 보니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상업적인 처세가 진실된 그녀의 성정과 마찰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나는 비슷한 경험을 하는 중인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잘할 수 있다고 있는 힘껏 용기를 드리려 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루 세 번 꼭 외칠 것이며 분명히 할 수 있고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중간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동안 있더니, 울음을 터뜨리는 것인가 했지만 목구멍 뒤로 잘 넘긴듯했다.
나는 김아멜 씨와의 대화 도중, 나와 이름이 비슷했던 그녀 소식을 들었다. 그자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먼저 떠나고 싶었는지 자기 발로 열차에 올라버렸다.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유쾌하던 그 사람이 왜... 나랑 그렇게 즐겁게 대화하던 그 사람이 왜? 어디, 어느 바에서 지독하게 술을 좋아하기에 술을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술의 즐거움을 알릴 것 같은 그 사람이 왜. 열심히 일을 배우는 중이라 꼭 나중에 사람들이 멋지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바를 열 것 같은 그 사람이 왜. 나는 김아멜 씨와 대화를 하는 중에는 최대한 의문을 눌렀고, 베이커리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바닥을 보면서 계속 질문을 던졌다.
집으로 와 씻고 면도하고 김아멜 씨네 빵집에서 구입한 바나나브레드를 한입 베어 물었다. 폭신하고 달콤했다. 바나나향이 더 나도 되겠는걸 싶었다. 나는 일단 저번처럼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손님에게 주문받을 때 사용하는 영어 표현을 한번 더 숙지하고 내가 일하는 아이리쉬펍으로 향했다. 정신없이 네 시간을 보내고 오늘 밤 이태원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노고지리의 찻잔을 듣다가 이름이 비슷했던 그녀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고 찬찬히 생각해 봤다.
아마 그녀는 사람들에게 터놓지 못할 무언가 괴로운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웃는 사진을 많이 올렸다. 엽기적이진 않으나 유쾌한 사진을 올렸다. 잔 뒤에 왜곡 효과로 턱 밑이 갸름해져 전체적인 얼굴 모양새가 기묘한 사진이라든가, 여름의 습한 공기를 물리치는 청량한 자기 모습을 꼭 하얀 액자 프레임을 씌워서 여러 개 올렸다. 여기저기 노다니며 즐기는 걸 좋아했고,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리게 해주는 술을 좋아했다. 그 아름답고 싱그럽던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고난이 본인을 짓눌렀을까, 뜨거운 용암이 속에서 도무지 꺼지지 못했을까... 아니면 이제 막 터지려고 하는 봉우리의 살갗에 모래바람이 스치니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일까... 젊고도 너무 젊은 우리가... 왜 우리의 하나인 당신이... 대체 왜... 나는 슬퍼서 질문을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에 작은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갔다. 팔로우는 해제되어 있었다. 나중에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연락처나 SNS 리스트에서 정기적으로 정리하는 내 습관이 그녀와 나 사이를 조금 떼어놨었나 보다. 여전히 생명이 느껴지는 그녀의 계정. 나는 최근 게시물로 들어갔다. 그곳에 달린 그녀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댓글들. 해가 바뀌자 다시 찾는 사람들.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그 문장들엔 아쉬움과 미안함이 담겨있다. 슬픔 그리고 허무. 다시 잡을 수 없는 그녀의 손. 알아주지 못했다는 것에서 오는 무력함. 행복하면 좋겠어, 행복해야 해. 거기선 행복해. 보고 싶어 친구야. 보고 싶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나는 버스에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두 번 불렀다. 아마 찬송가 같은 느낌이 있어서 길가에서 담배 피우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방식으로 교회에 빠진 건들면 피곤해지는 자로 봤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랑곳하고 싶지 않았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려고 할 때, 노래를 부르다 울먹거릴 것 같을 때, 지지 않고 더 노래를 불렀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이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나는 마음속으로 꼭 행복하시길 작은 기도를 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추모는 오늘의 이 정도였다. 내가 한 발자국 다가가서 클럽하우스가 아니라 어느 서울의 바에서 그녀를 만났다면 그녀는 살아있을까? 꽤나 솔직한 대화를 자주 하고 내가 바라는 만큼의 사랑을 돌려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살아가기가 넉넉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벼랑 끝에 있었을 때, 우리가 친구였다면 그녀는 내게 전화를 했을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좋은 동료로 만나 꺼지는 불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날 빛으로 우릴 다시 정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까운 먼치에 있었던 그녀는 싱그러운 모습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행복하세요 아무개 씨.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