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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Jul 22. 2019

자산운용업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다

투자자문회사들은 1980년대 후반 증권시장의 급등에 따른 투자 열기로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에 대한 노하우나 지식, 경험이 일천한 가운데 일확천금을 꿈꾸며 달려드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의 투자자문서비스가 요구된다며 설립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증권회사 객장의 풍문이나 영업사원이 전해주는 정보들에 의존해 거래를 하거나 아예 알아서 해달라고 영업직원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개인투자를 했지 돈을 내고 투자자문 서비스를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뿌리 박혀 있어 별도의 수수료를 낸다는 부분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그러한 인식은 사람들 가운데 지금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명맥만 유지해오던 투자자문사들에게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증권투자신탁업자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기존의 3 투신(한국, 대한, 국민투자신탁)과 지방 5 투신사로 제한되었던 투자신탁업에 신규 진출을 허용한 것이다. 다만 기존 투신사들이 판매와 운용을 겸업하다 발생한 부실규모가 커졌다며 (물론 그 부실의 상당 부분은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증권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노태우 정권의 12.12 증시 부양 조치에 따라 투신사들이 주식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면서 발생하였다) 판매와 운용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됐고 신규 진입은 운용업으로 한정되었다. 증권회사나 은행의 자회사로 있던 투자자문회사들이 하나 둘 투자신탁운용회사로 전환되었고 나도 재직하고 있던 증권회사의 자회사가 투자신탁운용사로 전환하는 프로젝트의 TF로 발령되어 자산운용업으로의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투자신탁운용업으로 진출을 준비함에 있어 그 분야의 외국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기도 하였는데 자산운용업에서의 성공요인은 운용철학을 세우고 지켜나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운용철학'이라고 하니까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철학'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고 따라서 자산운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운용철학이라 하겠다. 자산운용업의 목표는 시장보다 높은 알파를 창출하는 것이고 그 알파를 어떻게 창출해 나갈 것인가가 운용철학의 논점이다. 예컨대 가치투자는 증권의 적정가치를 산정하고 그 적정가치보다 싸게 거래되는 종목을 사서 적정가치 수준에 도달했을 때 파는 전략을 추구한다. 가격과 가치의 괴리에서 알파를 찾는 것이다. 이런 접근방법은 적정가치 평가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옥석을 구별하는 노력을 요구하고 시장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인 관점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투자철학은 어느 날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머리를 짜낸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테스크포스가 합의해서 만들어 놓은 투자철학에 대해 나중에 합류하는 운용인력들이 동의하지 않고 또 동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투자에 있어 그 철학을 구현할 투자 노하우와 스킬이 없으면 허울뿐인 것이 되고 만다.


자산운용회사들은 저다마의 투자철학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투자철학이란 것이 회사마다 그렇게 차별화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또 표방하고 있는 철학이 어떻게 구현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고 실제로 그 철학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았다. 일관성이 없이 그때 그때의 시장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가치투자' 철학을 꾸준히 유지하며 나름의 브랜드를 쌓아가고 있는 회사들도 있었지만 증권회사나 은행의 자회사로 설립되었던 투자자문사들이 자산운용회사로 전환하며 일제히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서 포장용으로 운용철학이라는 것을 내세웠기 때문에 그 철학에 뿌리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진입요건이 대폭적으로 완화되면서 시장에서 운용자로서의 평판을 쌓은 이들이 전문사모펀드 운용사들을 세워 활발하게 시장에 진입하면서 저마다의 컬러를 달리하고 있는 것은 이제 우리 자본시장에도 '운용철학'이라는 것이 그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당시에는 운용철학을 구현하는 노력보다는 명망 있는 펀드매니저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경영을 하면서 회사가 표방하는 운용철학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펀드매니저가 들어와 자기 방식대로 운용을 하고 또 그 펀드매니저가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되면 또 다른 스타일의 매니저가 들어와 새로운 방식으로 운용을 하는 식이었다. 내세우고 있는 운용철학은 애초부터 별 실천적인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부터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여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부터가 모호한 회사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앞뒤가 안 맞는 내용들을 버젓이 내세우고 있는 회사들도 있었다. 그만큼 자산운용산업의 깊이가 일천하던 시기였다. 시장에 주식형 펀드의 전체 수탁고가 수조 원 내외로 미미한 상태였고 대부분 채권형 펀드와 MMF 등 단기형 상품 중심으로 운영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무슨 투자철학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민망했다고 할 것이다. 심지어는 주식형 펀드에 스폿펀드가 등장해 며칠 만에 목표수익률을 도달했다고 하는 것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시기였다. 연봉을 많이 주고 스타펀드매니저를 영입하여 스폿펀드를 운용하며 초단기 매매를 하도록 하는 것이 영업전략이기도 하였다. 스폿펀드는 미끼 상품에 불과했지만 시장이 얼마나 투자철학의 관점과는 동떨어져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일례라 할 것이다. 투자철학은 그 당시에는 많은 경우 '개똥철학'만도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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