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 뉴욕에 헤지펀드 실사를 다녀왔다. 그 당시 운용자산 규모가 20조를 넘는 회사 몇 군데를 돌아보았는데 문언을 통해서나 접해보았던 헤지펀드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경험이 되었다. 제일 처음 방문한 회사는 존 폴슨이 설립한 폴슨앤컴퍼니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 것으로 알려진 회사였다. 안내되어 들어간 회의실 벽에 컬렉션 한 그림들이 잔뜩 붙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벽면에 그림 하나를 걸어놓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화랑처럼 그림을 한 벽면마다 몇 개씩 걸어놓고 있었고 화풍도 유사해서 들여다보니 모두 동일한 작가의 것이었다. 오피스 투어를 하다 보니 회의실뿐만 아니라 벽에 공간만 있으면 같은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금융위기에서 몰빵투자로 큰돈을 벌더니 그림에도 몰빵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실사를 진행해 보니 그 회사의 운영은 존 폴슨 혼자서 의사결정을 하고 나머지 조직은 모두 그 의사결정을 돕는 역할이어서 리스크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투자대상에서는 제외하였다. 실제로 얼마 후 이 회사가 운용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는 뉴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회사들을 실사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헤지펀드마다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투자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헤지펀드는 그 추구하는 전략에 따라 유형화되고 있고 그 유형도 매우 다양한데 동일한 유형으로 분류되는 회사임에도 그 전략을 추구하는 세부적인 방법론은 전혀 다른 것도 흥미로왔다. 회사마다 이직률이 매우 낮았고 경쟁회사로 이직하는 경우는 정말 찾기 어려운 것이 어떤 한 회사에서 익숙해지고 숙련된 투자 노하우가 다른 회사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는 해지펀드가 도입되지는 않았을 때라서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국내 자산운용회사들을 보면 표방하고 있는 투자철학도 대동소이할뿐더러 운용스타일에 있어서는 거의 차별성이 없다 보니 어느 회사를 가더라도 통하게 되는 구조가 운용 좀 한다 싶으면 뻔질나게 간판을 바꿔달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산운용회사들에 있어 시장에서 먹히는 사람 뽑아오면 되지 굳이 육성할 이유가 없게 되는 요인도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돌아본 헤지펀드는 회사마다 저마다의 투자스타일이 다르고 조직문화나 조직운영 스타일도 달라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어느 회사나 배울 것이 많았다.
실사 과정에서 투자대상에서 제외된 몇 개를 제외하고 5개 펀드를 20%씩 담는 사모재간접펀드를 론칭하게 되었지만 규제가 많아 성과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투자규모나 투자자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답답한 부분이었다. 그해 국회에서는 한국형헤지펀드 입법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호기심에 참석해 보았더니 여야를 막론하고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헤지펀드' 하면 떠오르는 것이 조지 소로스 등 몇몇 헤지펀드가 아시아 외환시장을 공격하고 외환위기를 증폭시켜 마침내 우리나라를 IMF 구제금융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악의 축'으로 인식하는 부분이었다. '부도덕하고 매우 큰 리스크를 감수하는' Scary 한 헤지펀드를 도입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식의 입장을 어느 야당 의원이 이야기했고, 여당 의원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어느 세월에 헤지펀드가 우리나라에서 가능해질까 하는 생각과 벽에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며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재간접 헤지펀드를 조사하다 보니 헤지펀드의 생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운용철학과 독특한 운용전략을 구상하여 스타트업을 일으킨 신생헤지펀드들은 통상 큰돈을 가지고 있으며 씨드머니를 투자해주는 재간접펀드들에 구애를 하게 되고, 재간접헤지펀드들은 신생 헤지펀드들에 운용정보를 제공할 것을 전제로 엄격하게 심사하여 그 전략에 대해 이해를 하고 가능성 있는 펀드들에 투자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투자된 헤지펀드들의 성과들을 모니터링하면서 표방하고 있는 전략들이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하여 아니다 싶으면 자금을 회수하고 성과가 양호한 펀드들은 3년 정도를 꾸준히 지켜보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본격적으로 동 펀드를 포로모션 한다. 판매회사들은 최소 3년 정도의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예 판매 대상에 올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해서 검증된 소수의 헤지펀드가 시장에 나오게 되고 그 테스트를 통과한 헤지펀드라도 더 긴 세월의 테스트를 이겨야 시장에서 살아남게 되는 것이 헤지펀드의 생태계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씨딩(Seeding)이다. 씨딩을 해주는 측에서는 돈을 대준 펀드 중에 성공한 펀드가 나오게 되면 그 과실을 나누게 된다.
이후 한국형헤지펀드 논의가 진행되면서 그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기회가 되는 대로 했었는데 제도화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문 사모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그중 몇몇 회사는 몇 년 만에 비약적인 수탁자산 증대를 이뤄냈고 그 대표적인 회사가 라임자산운용이다. 비유동성자산에 투자하는 모펀드에 투자하는 자펀드가 개방형으로 설계되었다는 것부터가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 이런 구조를 뻔히 알고도 수천억씩 팔아댄 은행과 증권회사들은 도대체 비즈니스를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그 의사결정의 구조는 어떤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앞서 본 헤지펀드의 생태계에 비추어 볼 때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KIKO나 DLF를 팔아대며 수수료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었던 은행들을 보며 그런 일들이 반복됨에도 바뀌지 않는 영업행태를 보면 영업정지를 강하게 때려도 시원치 않다고 생각이 든다. 기본이 안되어 있는 것이다.
개념만 가지고도 펀드를 팔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펀드 생태계다. 헤지펀드만 그런 것도 아니고 과거 인사이트 펀드가 그랬고 또 다른 대부분의 펀드들도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망을 돈으로 충동하여 팔아제끼는데만 능숙하다. 이런 것이 가능한 투자문화가 우리나라의 현주소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설정되어 세월의 테스트를 이긴 펀드만 리테일에서 팔릴 수 있는 구조로 변화되어야 비슷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투자전략을 설계한 펀드들이 세월의 테스트를 거치도록 씨딩을 해주고 그 성장의 결실을 나누는 씨딩 비즈니스가 성립하는 것이 생태계의 요체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스타트업들이 갖추기 어려운 내부통제시스템을 억지로 갖추도록 법으로 요구하고 시늉만 내면 봐주고 넘어가는 것도 차제에 재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헤지펀드를 만드는 스타트업들은 운용에만 집중해도 부족하다. 운영관리와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관리는 씨딩을 해주는 회사들에서 이미 갖추고 있는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실행 가능한 전략이다. 규제를 강화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대증요법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늦었지만 제대로 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정책에 대한 고민이 요청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