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가 평준화된다고 한다. 그중 50대가 되면 지성이 평준화된다는 얘기가 요즘 들어 공감이 많이 된다. 이제 60을 코앞에 두고 있다 보니 더욱이 그런 것 같다. 특히나 학창생활을 같이 했던 대학동창들이 페북 등에 적어 놓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단말마처럼 단문으로 뱉어내는 단어들의 조합에서 지성과는 이제 담을 쌓은 것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자주 보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의 말랑거림이 없어지고 자신만의 세계로 머리가 굳어지면서 모든 사물을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해석해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른 관점에 대한 수용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다름에 대한 적개심을 심드렁하게 드러내는 경우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렇게 10년을 더 살아가면 “꼴통”으로 불리는 사람들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벌써 그 반열에 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비슷하거나 더 생각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사람들이 정관계에서 리더가 되어 있다 보니 한국사회는 통합과는 거리가 멀어지지 않나 생각된다.
생각의 말랑말랑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 프레임을 스스로 강화하는 것이고 세상만사를 그 프레임으로 해석하면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름에 대한 수용성은 메말라버리고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배척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어진다. 정치인들의 표현에서 ‘정치적인 수사’는 찾아보기 어렵고 날 선 표현들만이 난무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나 생각된다. 겉으로는 날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비수를 품은 말도 있다. 그런 말은 결코 부드럽지 않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찌르기 위한 말이기 때문이다. 드러내 놓고 적개심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예리하게 마음을 후벼내기 위한 책략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지성으로 한번 우려낸 말은 부드럽다. 표현이 부드러운 것은 그만큼 생각의 말랑말랑함을 드러낸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준다. 다른 사람에게 울림을 주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말에 품격이 있어야 한다. 말의 품격은 지성을 드러낸다. 역으로 품격 없는 말은 지성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 기사에 딸려있는 댓글들이 대개 그렇다. 시정잡배와 같음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낸다. 유튜버들이 쏟아내는 막말 방송이 어떤 울림이 있겠느냐만 지나가는 사람 다 들으라고 볼륨을 높여 다니는 사람들도 쉽게 눈에 띈다. 대개는 할배들이다. 지성의 문을 닫은 지 오랜 사람들이다. 태극기 부대들이 대개 할배인 것과 같다. 요즈음에는 젊은이들도 한몫 낀다. 사색을 하지 않고 검색만 하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생각의 말랑말랑함과는 담을 쌓은 것이다.
생각이 말랑말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워내야 한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다름에 대해 한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그런 생각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배척하지 않는 것이다. 똑같은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전체주의다. 아니 생각을 강요할 수 없으니 똑같은 행동을 강요한다. 전체주의 체제하에 똑같은 행동에 익숙해지다 보니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용인하지 못하는 것이 굳어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 우리 사회가 아닐까 한다. K-방역의 성공도 상당 부분 그러한 측면에서 이해가 되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쯤은 제약해도 된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다 보니 마스크 안 쓰고 다니는 서구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 것이다. 그들에게 생각과 행동의 자유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을 야만이라 비하한다. 이런 것이 ‘국민교육헌장’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구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국기에 맹세하다보니 어쩌다가 그리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