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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루아의 고양이 Jan 21. 2022

무덤가 산책을 좋아합니다만

자가격리가 해제된 날, 구글맵으로 이미 수차례 복기한 동네 산책에 나섰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매일 아침 거실 창문에서 빼꼼히 내다보던 집 앞 성당. 열흘 간의 자가격리 기간 동안 나의 정신적 안녕을 책임진 곳이다. 특정 종교에 심취해 있진 않지만, 이따금 마음속이 시끄러울 때면 경건한 성당이나 사찰에 들러 풍파를 잠재우곤 했다. 그러니 자유인이 된 첫날, 영혼의 당 충전을 하듯 이곳으로 발걸음이 향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평일 낮 1시 반의 동네 성당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잠시 근본 없는 기복신앙 같은 기도를 마치고 나와 성당 뒷마당을 거닐었다. 영국에는 동네마다 성당이 한 곳씩은 존재하고, 특이하게도 그 안에 마을 공동묘지가 형성되어 있다. 죽은 자는 일상에서 잊히고 밀려나 명절 무렵에서야 그간의 잡초를 방치한 죄책감을 뽑으려 방문하는 우리네 묘지 문화. 그 간극을 떠올리니 낯설기도 했다. 죽음이란 저 멀리 자리 잡은 대규모 추모공원처럼 치열한 삶으로부터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와 매일 함께 하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행로처럼 느껴졌다.



영국 날씨답게 부슬부슬 안개비가 내리는 가운데 거닌 무덤가는 으스스하기보다는 고즈넉하고 편안했다. 1875년부터 이끼로 세월을 맞은 비석들이 즐비한 가운데 몇 년 지나지 않은 새로운 묘지도 눈에 띄었다. 마침 묻힌 지 얼마 안 되는 묘소를 정성스럽게 정리하는 할머니 한 분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채 단단해지지 않은 무덤 위의 흙처럼 할머니의 마음도 조금만 손대면 흙더미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스쳐간 인연일지라도 그 폐허 같은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고요히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산책을 이어갔다.



넷플릭스 드라마 <애프터 라이프(After Life)>에서는 아내와 사별한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우연히 동네 묘지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 친구가 된다. 매일같이 남편의 묘소를 찾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땅에 묻혔어도 여전히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베프로 남아있다. 역시 둘도 없는 절친이기도 했던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만을 했던 주인공은 외롭지만 담담하게 삶을 이어가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여전한 슬픔 속에서도 조금씩 힘을 얻어간다.


상실의 아픔을 매개로 이제는 무덤가 낮술까지 함께하는 절친이 된 두 사람 (사진 출처: digitalspy.com)


서로의 황량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잠깐씩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도 둘의 마음에는 어느새 여린 새살이 돋아난다. 영국에서는 돌아가신 분을 잊지 않기 위해 가족들이 성당이나 공원에 벤치를 기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마음이 담긴 벤치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픔을 달래려 묘소를 찾는 이들에게 잠깐의 온기를 내어준다. 상실을 먼저 겪은 자가 새로이 아픔을 경험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위로. 무덤가 벤치들은 슬픔에 젖은 자들을 품어주고 이어주는 푸근한 힘을 품고 있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삶의 유한성과 세속적 쾌락의 덧없음을 강조한 바니타스 미술(Vanitas art)이 유행했다. 라틴어로 바니타스는 허무와 공허를 의미하는데, 바니타스 미술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불가피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인간의 운명에 주목했다. 유한한 인생에서 세속적인 성공과 사치, 향락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같은 정물과 부와 쾌락을 의미하는 보석, 술병 등을 하나의 작품 안에 혼재되게 표현했다. 삶의 빛나는 순간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떠올릴 때 오히려 현재를 더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다.


<정물: 인생무상의 알레고리>, 하르멘 스텐비크, 1658,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무덤가를 걷는 일은 바니타스 정물화를 바라볼 때처럼 치열한 삶에서 한 발짝 벗어나 늘 양면처럼 붙어있는 죽음의 존재를 떠올리게 해 준다. 알랭 드 보통<불안>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의 효용성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 준다는 것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떠올리면 인생의 우선순위도 재정비되고, 버킷리스트를 매번 미루는 태도도 고쳐진다는 이야기. 무덤가를 천천히 거닐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살아가면서  이만큼만 내게 주어진다면 이미 그걸로 넉넉한 인생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오늘 떠올린 얼굴들과 추억으로 남은 순간들에게 오래도록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어릴 적엔 친구네 집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플래시 불빛 아래 공동묘지 귀신 얘기를 들으며 소름이 쫙 끼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부러 무덤가를 찾다니. 이러다 철드는 건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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