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찍한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켜켜이 입힌 평면적인 그림도 좋지만, 역시나 한 바퀴 빙 둘러가며 다각도에서 탄성을 내뱉게 만드는 도자기의 입체적인 매력에는 당할 수가 없다.
흙을 빚어 어떻게 이토록 섬세한 결을 이뤄낼 수 있을까?
잔자갈과 거친 모래, 지푸라기로 가득 찬 인생의 흙무더기를 묵묵히 체로 걸러 찬찬한 손매로 곱게 빚어내면 내 삶 또한 이리 영롱해질 수 있을까?
적요한 전시장 안에 순간 웅-하고 가슴속을 헤집는 마음의 타종이 들려왔다.
축 처진 내 어깨를 지긋이 움켜쥐며 말없이 온기를 전해주듯, 별다른 설교 없이 살포시 나아갈 길을 비춰주는 든든한 인생 선배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그 안온함이 느껴진다.
그런 넉넉한 품이 그리울 때 홀린 듯 찾게 되는 것이 다름 아닌 도자기의 온화한 마력.
고영훈 <시간을 품은 달> 2020
얼마 전, 도자기의 매끈한 양감에 빠져있던 나를 마치 난생처음 명란 파스타를 맛보았을 때의 기이하고도 부드러운 충격처럼 단숨에 사로잡은 그림을 만났다.
7년 만에 열린 고영훈 작가의 전시회에서였다.
분명 도자기인데, 도자기가 아니라니?
평면 위를 표표히 부유하는 듯한 도자기 그림이 마치 홀로그램 영상처럼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작품의 표제 또한 <시간을 품은 달>.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감과 4차원의 시간성을 구현하여 대상의 본질까지도 화면에 담아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다차원이 동시에 서로 얽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었다.
고영훈 <시간을 품은 달> 근접 촬영
살다 보면 분명 눈 앞에 생생히 펼쳐지고 있는 장면 이건만, 어쩐지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져 도무지 실감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도 내내 생경한 기분이 들어 이쪽저쪽을 분주히 오가며 과연 판판한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인지 몇 번이고 확인해보았다.
오랜 세월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창작을 이어온 작가는 이제 도자기 연작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함은 물론, 어느새 영적인 영역마저 툭 건드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품에서 찬찬히 빠져나와, 마치 고해성사라도 마치고 나온 듯 마음 한켠이 말그레진 기분으로 전시장을 나셨다.
고영훈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2021
'도공들은 만드는 즐거움에 살고 있으며, 그룻을 빚어내는 즐거움이 바로 그 아름다움을 보는 마음'이라 했던가. '해묵은 조선의 그릇들은 오늘도 아예 늙을 줄을 모르고 있다'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말처럼, 즐거움에 푹 빠진 도공의 마음가짐으로 각자의 도자기, 그림, 또는 그 무엇인가로 우리네 일상을 빚어내려 가다 보면푸릇푸릇한 마음만큼은 언제까지나 지켜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