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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Sep 23. 2021

일기 - 나를 기억하는 방법

#일기 #숙제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 초등학교 때는 일기를 방학숙제로 내줬다. 몇 번은 그날그날 일들에 대한 쓰긴 하지만 공책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날씨 얘기와 친구들과 재미나게 놀았다는 식의 줄거리만 앙상한 사실을 몇 줄 적는 일기는 고역 그 자체였다. 억지로 글을 늘리다 보니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문장은 어색했다. 구체적인 상황 설명이나 묘사 따위가 없는 글이다 보니 두리뭉실하게 비석 치기, 자치기 등 놀이가 '재미있었다'라든가. 친구와의 말다툼이나 의견 충돌은 일기 쓰기의 호재가 되는 반가운 사건으로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아야겠다'는 식의 다짐으로 맺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한적한 시골에서의 반복된 일상에 관해 쓰는 일기는 다른 어느 숙제보다도 어려웠다. 하루 이틀 밀리던 일기는 개학에 가까워 벼락치기 가짜 일상으로 완성되었다. 빈 페이지마다 날짜를 미리 적어 넣고, 특별히 기억나는 날씨가 있는 날을 빼고 흐린 후 갬, 맑음 뒤 비 등등으로 진짜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비틀어 기록했다. 내용도 아무 날이나 골라 소설처럼 써 나갔다. 맨날 똑같을 수 없어 동생이나 누나의 일기를 공유하고 베끼기도 했다. 글씨가 바르고 깨끗하게 정리가 돼 우수 과제물에 뽑히기도 했었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일기 쓰기가 있었다.


어른이 돼서는 일기 형식을 탈피해 여행을 다녀오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글쓰기를 했다. 예전의 일기체에서 벗어나 상황을 묘사하고 멋진 표현도 생각해서 쓰고 스스로 흐뭇해하는 즐기는 글쓰기로 변했다. 멈추지 않은 독서 덕분이기도 하다. 요즘은 자꾸 쓰다 보니 실력이 늘었는지 (?) 문장이 늘어지고 긴장감이 없어 오히려 사족 같은 단어들을 덜어내고,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는 교정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글을 쓰는 것은 습관의 문제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냥 놔 버리면 오래가지 못하는데 글로 적어 두면 제목만 봐도 당시의 상황과 생각들이 생생히 떠오른다. 사물에 대한 표현이나 생각들도 업그레이드가 된다. 한 줄을 쓰더라도 즐겁다면 내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글쓰기는 나 자신을 치유하고 평온하게 행복을 즐기는 비법이다. 

컨셉진에서 마구잡이로 던져주는 하루 한 단어로 쓰는 일기 같은 글들이 때론 억지스럽다가, 벽에 부딪친 것처럼 막막하다, 얼른 쉽게 생각나는 것들은 한순간에 후다닥 써버리기도 했다. 숙제를 마치고 한 권의 책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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