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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Jun 05. 2023

승진 대상자 명단에 조차 오르지도 못했으면서

당연히 대상자 명단에는 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승진이라는 이벤트가 조직사회생활 중에는 중요한 과정에 속한다. 어쩌면 그것을 위해서 남들보다 힘든 일도 덤비고 궂은일도 괜찮은 척하면서 경력을 쌓고 상위 관리자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승진을 하고 관리자가 되면 조직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나의 생각들을 접목시킬 기회를 얻는 것이다.  


  6월과 12월 상하반기로 있는 승진심사가 있는데 상반기엔 3자리 밖에 안 되는 자리를 놓고 다투는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었다. 명단이 발표되기 전부터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대상자 명단에 들어갈 거라는 분위기였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나는 내 위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도 따져 보지도 않고 비비적대서 이번엔 만년 팀장에서 한 직급 승진을 하고 퇴직을 하려는 희미한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승진의 첫 단추인 명단에도 들지 못한 것이다. 남의 입에서 전해 들은 소식은 내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상이 너무 커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막막했다. 발표된 명단에 어떤 하자가 있는 건 아닐까? 왜 빠지게 됐을까? 등등 머릿속을 헤집는 의구심과 상실감은 꽤 컸다. 내심 괜찮은 척, 할 수 없다를 되뇌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척했지만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갑자기 홀로 섬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닥쳐왔다.  

  나만 괜찮다고 괜찮다고 해도 다 괜찮은 건 아니었다. 후배 동료들의 시선과 팀원들의 책상 위를 감도는 묘하게 무거운 분위기가 나의 포지션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화라도 내고 조퇴를 해야 하나? 아니면 아주 괜찮은 척 쿨하게 더 소리를 크게 내면서 어색함을 달래야 하나?   


  솔직히 한 직급에 10년 동안 있으면서 승진도 못하고 똥차로 머물러 있는다는 건 능력이 없거나 좋게 봐서 운이 없다고 봐야 하나 헷갈릴 뿐이다. 

  돌아보면 내가 쉽고 편한 자리만 고집하고 찾아다닌 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고 기피하는 부서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남들처럼 편하게 휴가나 휴일을 보내지 않았고, 나름 남들이 인정할만한 성과도 냈는데....

  다만 내가 내향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사교성이 좀 부족한 면은 있다. 거기에 음주 가무는 영 꽝이니 인지도 면에서는 좀 떨어지는 편이긴 하다. 어쩌면 그게 젤 중요할 수도 있는데.   

  젤 속상하고 창피하고 힘든 건 당연히 명단에 들어갈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내 내면에서 배어 나오는 쪽팔림이었다. 그럼 그렇지. 네가 뭐 되겠어.라는 식의 상상하기 싫은 비웃음(실제로 그러지는 않겠지만)이 들리는 듯한 자괴감이었다.       


  사무실에서 저녁을 먹고 아주 괜찮은 척 견디며 자격증 공부를 한답시고 눈은 글에 가 있는데 마음은 허공을 떠돌았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평소 업무적으로 밀접하게 가까웠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강 00 연합회장(나는 주로 회장님이라고 불렀다)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소식을 들었다며 극구 소주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장애인급 장염을 앓고 있어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술을 먹지 않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 나오라는데 싫지 않았다. 어색한 포지션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컸었나 보다. 이런 날은 소주 한 잔 해야 한다며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위로해 줬고, 나도 술이 주는 용기로 속마음을 털어놨다. 후련했다. 당장 낼 아침 복통이 올지라도 오늘은 좀 마셔도 괜찮겠다 싶었다. 

  내 마음을 들어준 고마운 마음이 통해 우리는 친구가 되기로 했다. 훗날 내가 북카페를 만들면 꼭 초대할 친구 목록에도 올릴 만큼 외로웠던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다.


  승진이란 내가 조직에 속해 있을 때나 간절하지 조직 밖의 사회에선 누구도 나의 승진에 크게 관심 없는 일 아닌가.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나 자신을 위로하는 변명을 얹어서 잠깐이면 지나갈 잔인하게 푸른 6월의 시간을 견디고 7월을 맞으면 그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새까맣게 잊고 무더위를 피해 휴가도 가고, 평소처럼 무심한 나날을 살아내고 있을 내일의 나를 상상해 본다. 30년을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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