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래 Apr 13. 2023

잔인한 산불의 계절. 봄

아카시아 꽃이 피면 산불이 끝나려나

  인간의 기억력 문제인가? 습관 문제인가? 

  주홍글씨처럼 누군가에겐 잔인한 기억이지만 누군가에겐 흔적조차 없는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 

  올봄도 누군가는 꽃을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들녘에서 불을 피운다. 작년 경북 북부지역의 산불이 산하를 휩쓸고 지나갔고, 재작년에는 속초, 양양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에서 강력한 산불이 발생했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산림대응 3단계가 곳곳에서 연속 발생할 만큼 강력한 산불들이 잔인한 봄 꽃으로 피어올랐다. 우리는 매년 점점 더 강해지는 산불을 경험하고 있다. 아주 예전엔 그러려니 했었다. 땔감이 나무에서 화석연료로 바뀌고, 조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산불은 재난이라는 다른 양상으로 계절을 삼키며 다가오고 있다.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는 건 지난 일들을 쉽게 잊는 망각의 문제이거나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습관의 문제일 수 있다. 어쨌든 모든 이유를 불문하고 결과는 너무도 처참하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수십 년 자란 나무들의 재가 남고 산불진화대원들의 근심과 땀이 말라 있고, 산불진화에 투입된 인력과 장비 그리고 바람처럼 날아간 비용이 허공에 맴돈다. 

  통제되지 않는 불길을 보고 있노라면 무서움에 전율이 느껴진다. 화선이 보이는 산 아래는 매캐한 연기는 물론이고 후끈한 열기가 전달된다. 대류현상에 의해서 바람은 회오리치고, 그 바람을 타고 불은 날개 돋친 듯 여기저기로 날아다닌다. 진화를 위해 산에 올라가기도 어렵거니와 올라가도 이리저리 비화되는 불에 갇힐까 연기에 먹힐까 가쁜 호흡만큼 머리도 복잡해진다. 


  하지 말라는 논 밭두렁이나 쓰레기 태우는 일, 산림 주변에서 담배꽁초를 버리는 일들은 왜 반복되는 걸까?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이기적인 습관 때문이거나 나에겐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사이비적 믿음 때문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근거 없는 주술적인 힘의 이끌림 때문인가. 

  모든 언론 매체를 동원해서 설득한 들 메아리 없는 외침임을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 슬픈 봄은 계속된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사이비적 믿음이든 주술적인 힘이든 상관없이 행하려는 자는 순간만 지나가면 된다는 안일함으로 분화는 계속된다. 어차피 하려고 하는 자는 '설마'에 갇힌 기억의 숭배에 가까운 믿음의 벽 때문에 결국 불꽃을 튕기고야 만다. 그러니 이제는 행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와의 싸움을 해야 한다. 아무리 크게 스피커를 켜고 떠들어도 듣는 사람만 듣고 여전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 승산이 있는 건 다행히도 산하의 99%는 아직 멀쩡히 계절의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지키려는 자들이 더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좀 더 세밀하고 촘촘하게 지키는 계획을 세우고 지키려는 자들의 눈에 힘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들자.  


  웬만한 산불현장에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비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이다. 헬기 한대를 운용하면서 소비되는 예산을 생각해 보라. 산불현장에 헬기 20여 대를 동원했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고 있다. 진화에 소요되는 예산을 예방활동에 적극 투입하자. 온정주의로 눈감고 지나가는 일들에 대해 엄정한 법의 잣대로 처벌하자. 3-4월만이라도 감시자들의 눈에 걸리는 위반자에게는 로또에 버금가는 행운을 안겨주자. 그래서 감시자가 봄 나들이객처럼 즐비하게 하자. 너무 폭압적, 독재적 발상 같지만 현장이 그만큼 치열하고, 참혹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잔인한 봄의 재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강릉에서 또다시 산불이 발생했다. 물론 전봇대에서 발화된 것으로 추정된 것이지만 역시 결과는 참혹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 끝났다고 탄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며칠 갈 것 같은 산불은 다행스럽게도 비가 내리면서 멈췄다. 인간이 만든 재앙을 자연이 통제해 준 셈이다. 언제까지 자연에 기댈 수만은 없다. 인간이 만든 재난이니 인간이 절제하고 통제해야만 우리는 여전히 따뜻하고 행복한 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휴대폰 분실하면 내 생활은 로그-OFF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