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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May 24. 2024

소방서에서 '어쩌다 콘서트'가 열렸다

가장 소방서 같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

  소방서가 겉보기엔 잔잔한 호수의 수면처럼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얼음장 밑처럼 고요한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겉모습만 보는 일반인들은 이런 긴장감을 잘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소방관 제복을 입는 순간 신기하게도 저절로 몸에 스며든다면 믿을까? 영화에서 샤워하다가 알몸으로 뛰어 나가는 장면이라든지, 화장실 볼일을 보다가 후다닥 일어서는 일이 현실이니까.


  요즘은 소방서에서 직원들의 심리적 긴장감을 해소하고 재난현장에서 목격하는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사를 배치하고, 심신안정실을 만들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소방관 스스로 멘탈을 강화시키고, 긴장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몇 해 전에 근무하던 소방서에 카페 공간을 마련하고 작은 콘서트를 열었던 일을 음성에 와서 다시 시작했다. 청사를 관리하는 예산 장비팀에서 현관에 화재 현장 사진이 아닌 아주 단아하고 근사한 백자 사진을 오렌지 빛 전시등과 함께 예쁘게 걸어 논 것을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서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을 하셨다.

  first in last out!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 소방관의 기도문도 하나씩은 걸려 있다. 여기저기 깃발처럼 나부끼는 구호들! 현장에서 늘 보던 장면을 다시 눈 돌려 사진으로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국민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굳건한 사명감도 분명 필요하지만, 그 의무감을 등에 지고 현장활동을 하는 대원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건 소방조직 내부에서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소방관들이 근무하는 소방서가 이랬으면 좋겠다. 가장 소방서 같지 않은 정서가 느껴지는 환경- 가령 미술관이나 도서관처럼 고요할 순 없지만 숲 속에 있는 것처럼 벽을 색칠하고, 물소리가 들리는 시냇가에 앉아 있는 것 듯한 환경을 만들어 근무하도록 함으로써 재난현장에서 마주하는 엄중하게 무겁고, 때론 감당하기 버거운 부담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정서적으로 안정화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소방서가 미술관이나 콘서트장처럼 신나고 재미난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첫 번째로 점심시간 후 틈새 시간을 이용해 콘서트를 개최했다.

  콘서트 출연자들은 무대에 서기 위해 기타 줄을 튕기며 연습에 몰두하고, 색소폰 연주자는 틈틈이 음계를 익히는 동안 세상만사 급하고, 나쁜 기억들은 잠시 뒷전으로 물러나고 오직 무대에 설 생각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4월 마지막주에 열린 두 번째 어쩌다 콘서트는 넉살 좋은 직원이 사회를 봤다. 첫 회보다 벌써 짜임새가 달라졌다. 재치 있는 유머로 웃으며 시작했다. 잘 생기고 목소리가 중후하게 매력적인 부산 사나이가 시 낭송했다. 직원의 자작시를 낭송하고, 덧붙여 소회도 발표했다.


  두 번째로 보건팀장이 색소폰 연주를 준비했는데 음향이 잘 안 맞아서 몇 번 시도 끝에 결국 음악 없이 연주를 했다. 실수하고 엉킬 때마다 환호와 격려 박수가 쏟아졌다. 우리 직원들이 도전해 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실수가 나오지 않았나 아전인수격 해석을 해 본다. 완벽하게 잘했다면 다음 도전자는 두려워서 포기할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렇게 실수가 있어도 응원과 환호가 쏟아진다면 누구나 한 번쯤 자기를 독려해서 도전해 볼 용기를 얻지 않을까.

  대응과장과 감찰주임의 기타 합주가 이어졌는데 젊은 직원들이 잘 알 수 있는 곡으로 연주와 노래가 이어졌고, “사랑한다 사랑해”라는 곡의 매력에 끌려 연습했다는 노래는 박수가 리듬을 탔고, “사랑한다 사랑해~ 부르고 불러도 모자란 사랑아 ~ 부분에서는 떼창도 이어졌다. 음성센터장의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로 4월의 콘서트가 흥겹게 마무리되었다.


  점심시간이면 동료들과 잡담을 하거나 낮잠을 잘 때에 많은 직원들이 모여 잠시나마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작은 이벤트의 시작이 이렇게 미미하지만 그 끝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귀찮고 출연자가 없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지 아니면 여기저기서 나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손을 드는 사람이 있어 계속될 수도 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직원이 복도나 현관 벽을 빌려 갤러리처럼 그림을 걸어 자랑해도 되고, 아들, 딸이 피아노 경연대회서 입상을 해 자랑하고 싶어 데리고 나와서 아빠 엄마와 함께 노래를 불러도 좋겠다.


  소방서 어쩌다 콘서트에서 익힌 노래와 연주 실력으로 전국노래자랑에서 입상을 하고, 가요 오디션 프로에 나가 성적도 거두었으면 좋겠다.      

  내가 모르는 내 안에 있던 재능이 깨어나 소방업무와 재능이 조화롭게 이뤄지는 건강한 소방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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