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초순의 어느 날인가부터 점심 식사 후 생명의 신비,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쏠쏠한 재미가 생겼다.
식당 앞 지하실 입구 계단 위 처마 끝. 흰 페인트로 깨끗하게 단장된 벽이 제비의 보금자리로 선택되어 흙이 묻혀지기 시작했다. 매 끼니때마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곳을 선택한 이유가 천적으로부터 안전한 곳이라고 제비는 판단한 듯했다. 제비는 왜 사람이 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했을까? 제비에게는 흥부의 DNA만 있어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보호해 줄 거라는 확신만 있는 걸까?
예전처럼 제비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어릴 때 제비를 보지 못하고 자란 젊은 직원들도 많다 보니 제비집의 건축에 대한 각각의 의견은 분분했다. 벽이 오염될 뿐만 아니라 제비집 아래로 제비똥이 비처럼 떨어져 밥 먹으러 가다 머리에 똥을 맞을 수도 있고, 주변이 엄청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초장에 미리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주로 나왔다. 철거 의견이 우세를 보일 때쯤 제비집을 구한 반전의 괴담이 등장했다.
축사를 운영하는 이가 말했다. 제비집을 건드렸던 해에 출산한 송아지가 세 마리나 죽었고, 이듬해엔 가만히 놔뒀더니 괜찮았다는 것이었다. 흥부놀부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가 없고, 자기에게 아무런 해가 없는데 철거하자고 고집부리는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제비집은 철거 위기에서 단번에 벗어나게 되었고, 거기에 더해 날개를 접고 앉아서 쉴 수 있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제비똥을 받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새끼들의 추락위험에 대비한 구조 에어매트 역할을 할 수 있는 베란다까지 지어졌다.
사람과 제비의 상생을 위한 묵시적 동의가 도출되자 건축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흙으로 어느 정도 크기의 범위를 정하는 기초공사 이후 제비 부부는 한시도 쉴 틈이 없이 부지런히 들락날락거렸다. 주말 집에 다녀 오는 동안 거짓말처럼 번듯하게 집을 완성시켰다.
알을 낳았는지 두 마리의 제비가 교대로 둥지를 지키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날아가면 다시 한 마리가 들어와 앉았고, 타이밍이 안 맞아 일찍 돌아오면 베란다에서 대기하며 우리를 지켜보곤 했다.
식사를 마친 직원들은 누구나 한 번쯤 제비집 앞에서 대화를 나누었고, 제비 부부의 동향을 살피며 그들의 가정사에 관심을 가졌다. 부부싸움을 연상시키는 장면에서는 동물의 세계와 인간세계가 비교되기도 했다. 그들의 사생활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제비 부부가 알을 낳고 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느껴질 만큼 둥지에 머무는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알은 몇 개쯤 낳았을까? 궁금했지만 지붕과 제비집 사이가 비좁기도 하려니와 높아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왕지사 우리에게 둥지를 튼 이상 제비가 물고 올 흥부전의 박 씨 같은 행운이 언제 어떻게 올까 하는 은근한 기대가 생겼다.
제비가 돌아오기 전인 4월 말경 소방기술경연대회 도대회에서 우리 소방서가 인명구조와 화재진압분야 두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해 전국대회 출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제각각 제비들이 가져올 행운이 전국대회 입상이면 좋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 아래서 화재진압 매뉴얼을 익히며 땀 흘려 훈련한 직원들의 노력이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어지는 행운을 제비가 안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했다. 사실 화재진압 전술 경연대회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아주 민감한 부분이 많은 경기의 특성 (우리는 경기의 성적을 좌우하는 게 운칠기삼[운이 칠이고 기술이 삼]이라 불렀다)을 고려할 때 우승자가 매년 나오지만 우리가 차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우승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우승을 우리가 해냈다. 2024년 충북 최초 화재진압분야 전국대회에서 우승했고, 경기에 참가한 4명의 대원들은 1계급 특진을 했다. 물론 피땀 흘려 맹훈련 한 노력의 결과라는 의견에는 이견이 없지만, 제비가 물어 온 박 씨 같은 행운이라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제비의 행운에 관한 집착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제비와 관련된 이 토템미즘의 신비로운경험을 마음속에 새겨 넣었고,제비는 또 한 무리의 선량한 우군을 얻게 되었다.
이후 제비 부부의 꽤 오랜 시간(약 2주 정도로 추정됨)의 노력으로 알이 부화해서 세 마리의 제비가 태어났다. 생명신비의 다큐멘터리를 리얼로 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점심 식사 후 한참을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동태를 관찰하며 담소를 나눴다.
물 찬 제비라는 별명처럼 재빠른 비행을 자랑하듯 관람객 앞으로 휘돌아 집으로 날아들어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나갈 때도 감히 건드릴 생각 말라는 위협적인 비행을 선보이며 나갔다. 새끼들의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고, 집이 비좁다는 생각이 들 즈음 이소가 이뤄지겠지 생각했다.
6월 마지막 주 월요일 아침 출근해서 식당 여사님께 세 마리 제비들의 이소 순간을 들었다. 두 마리가 베란다에 앉은 부모의 격려 속에 첫 비행에 성공했고, 한 마리가 둥지에서 머뭇거리자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와 입에 넣어주고 난 후 나머지 한 마리도 결국 날아갔다고 했다.
이제 텅 빈 제비집을 바라보며 무더운 창공을 비행하다 혹시 쉬러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고 관심을 가져본다. 내년에 그 부부들 혹인 새끼들이 부모가 되어 이곳에 둥지를 틀고 또 다음 세대를 잇기 위해 찾지 않을까?
소방서 처마 끝 제비 가족의 이야기는 '행운이란 그저 우연히 찾아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간절한 믿음을 바탕으로 땀 흘려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교훈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