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사진처럼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올랐던 월악산에 대한 힘들고 가팔랐던 기억도 희미했던 터였고, 대장염을 오래 앓고 있어 여행 다니기가 겁부터 나서 어디 다니기를 꺼려했었다. 특히 산행은 더욱 그랬다.
그런 요즘 약을 바꾸고 음식 조절에 신경을 썼더니 여행에 다소 자신감이 붙었다. 보름 전 친구로부터 월악산 산행 제안이 들어왔을 때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있어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세상에 당당히 나를 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흔쾌히 약속에 응했다.
산행은 보덕암 방향에서 하봉, 중봉을 거쳐 정상인 영봉에 오르는 코스로 잡고 8시 40분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특별히 산행에 관한 사전 탐구를 하지 않았고, 유튜브 하는 친구가 올린 영상을 본 게 다였다. 젊었던 어느 날에 쉽게 올랐던 어설픈 기억만으로 시작하기에는 초입부터 몰아치는 오르막이 만만치가 않았다.
깎아놓은 듯한 절벽에 놓인 철제 계단부터 시작해서 작은 방부목 계단까지 이건 기울기가 계단이 아니라 사다리에 가까웠다. 진짜 정말로 하봉까지 오르는 길에 다 합쳐서 수 십 미터의 짧은 거리만이 평지이거나 이게 내리막인 가 느끼기 어려울 만큼의 아주 조금 내리막이 있었을 뿐 한숨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오르막을 연출했다.
오죽하면 같이 간 친구에게 부처님 오신 날에 이렇게 자비가 1도 없는 무자비한 등산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오르막을 오르는 길을 택하라면 주저 없이 계단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뭘 붙잡고, 어디로 발 디딜까? 스틱은 어디를 짚을까 고민하지 않고 터벅터벅 한 계단씩 발을 옮기면 10-20cm씩 고도를 올려주는 편리한 장치가 아닌가. 게다가 하체운동 삼아 스쿼드나 계단 오르기 헬스기구의 5-6 정도의 스피드로 1천 개 정도를 15분 남짓만에 오를 정도로 운동을 했기 때문에 계단이 아니라 사다리도 자신 있었다.
그런데도 한 계단을 오르면 또다시 나타나는 계단. 저 앞에 보이는 사다리처럼 매달린 계단을 보면서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렇게 잔인한(?) 등산로를 하필 생일날 오르게 하시다니!
신록이 울울창창한 숲 길에서 뫼비우스띠에 갇힌 것처럼 반복되는 계단을 오르다 보니 나무 사이로 옅은 하늘이 언듯 언 듯 보여 능선이나 봉우리에 다다른 조짐이 나타났다.
드디어 하늘이 열려 고개를 쳐드니 눈앞에 암봉이 우뚝 나타났다. 처음부터 영봉일리는 없고, 차례를 따지니 막내 하봉이려니 생각이 들었다.
무한 반복의 무자비한 계단 산행의 대가는 달콤했다. 열린 하늘 아래로 펼쳐진 풍광이 비로소 부처님의 자비로움과 같았다. 몸소 체험하는 깨달음 가르치려 이 고행을 연출하셨나 싶었다.
저 멀리 펼쳐진 아스라한 산 너울과 파란 청풍호 물길이 만든 아름다운 절경을 보고 있노라니 고행의 계단행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원한 바람에 이마의 땀이 마르듯 사라져 버렸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계속되었다. 중봉을 향해 다시 암봉을 타고 내려가는 계단의 기울기도 가히 공포스러울 만큼 절박했다. 평평하고 편한 길은 없었다. 오직 봉우리 위에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휴게 공간만이 여유를 던져 줄 뿐이었다. 다시 돌아갈 길을 생각하며 뒤돌아 보니 두려움이 엄습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니었고 친구도 그랬다.
마침내 중봉을 지나 영봉을 오르기 위해 가파르고 긴 내리막들을 내려갔다. 내리막을 가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란 걸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말해주고 있었다. 마치 편하게 잘 내려왔지? 이제 시작할까?라고 말을 하는 듯했다. 그리곤 달팽이관처럼 뱅글뱅글도는 절벽 계단이 시작되었다.
역시 자비는 없었다. 그러나 학습의 효과는 있었다. 자비 없는 고행 뒤에 따라오는 자비로운 모습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허걱 소리가 날 정도로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계단을 붙잡고 드디어 영봉에 올랐다.
북동쪽 방향으로 산너울과 한수면 소재지의 마을들이 성냥갑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남서쪽으로 중봉 하봉과 함께 청풍호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점심으로 빵과 참외, 키위 등 과일을 조금 먹으며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처음부터 원점회귀를 얘기했던 내가 먼저 다른 방향으로 가자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는데 친구가 덕주사 방향으로 갈까 하는 얘기를 꺼냈다. 옳다구나!
"사실은 나도 다시 중봉, 하봉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라고 고백했다.
하산은 덕주사 방향으로 정해졌다. 내가 강하게 반대할 명분도 힘도 없었고, 못 이기는 척 달콤한 유혹에 올라탔다. 역순으로 진행되는 산행에서 그래도 쉽게 꺼니 생각했던 덕주사 코스도 만만치가 않았다. 헬기장을 지나 평평한 능선의 신갈나무, 굴참나무의 싱싱한 5월의 신록길 속에서 잠시 행복했을 뿐 덕주사 마애불까지 끝도 없이 계속되는 내리막 계단은 보덕암 길 못지않은 고행길이었다.
덕주사로 오르는 길도 역시 자비가 없음은 마찬가지다. 더구나 보덕암 쪽에서는 봉우리를 넘으며 하늘을 보는 즐거움이라도 있지. 이곳은 오로지 계단 밖에 없지 않은가? 다녀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얻은 결론은 월악산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보덕암 코스로 올라 덕주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게 맞다. 나중에 택시 타고 보덕암으로 가는 중에 기사가 하는 말이 그랬는데 꼭 상술 때문만이 아님은 가본 사람만이 안다.
신라의 덕주공주와 마의태자의 슬픈 사연을 머금은 마애불에서 부처님의 자부로운 미소 앞에 두 손 합장하며 기도를 올렸다. 종교란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평화롭게 하면 그만이기에 불교든 천주교든 기독교든 상관없었다. 호주여행 때도 대성당에 들어가 위대함과 엄숙함에 기대어 기도를 했으니까.
우리는 산행을 마치고 덕주골 산장에서 송어회와 감자전, 동동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부처님 오신 날의 무자비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너무너무 자비로웠던 월악산행의 추억을 되새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