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해야 하나? 이 질문만 만 번쯤 던지는 중
내가 다니는 회사는 팬데믹에 정통 펀치를 맞은 항공사로,
재작년부터 유급 휴업 제도가 있었다.
작년 7월 육아휴직에서 복직함과 동시에 유급 휴업의 꿀을 누려보고자 하는
꼼수(?)를 부렸으나 통하지 않았고 (feat. 복직한 자, 열심히 일하라!)
계란으로 바위 치듯 팀장님께 빌고 협박하고 누누이 요청드린 결과
팬데믹 끝자락, 오월 딱 한달 쉴 수 있게 되었다.
5월 2일부터 실외 마스크도 벗는다는데
여행 수요가 급격히 살아나서 비행기 예약율도 가파르게 오른다는데
이거 이러다 갑자기 휴업 취소되고 중간에 나오라는 거 아냐?
불안감을 가졌지만 그래도 한 달은 푹 잘 쉬었다.
물론 푹 쉬었다는 표현에는 아래 의미는 포함되지 않는다.
1. 오래 쉬었다
2. 충분히 쉬었다
3. 이제는 일하고 싶다
4. 놀기도 지겹다
5. 역시 난 일을 해야 하는 체질인가봐
한 달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몸은 여전히 무겁고 운동은 시작도 못했으며
회사 일은 완전히 잊은 듯 기억도 나지 않고, 시계추처럼 출퇴근하지 않으니 매일이 즐겁다.
그 중 가장 좋은 점은
아침에 일어난 다미가 더듬더듬 엄마를 찾는 손길을 볼 수 있는 것,
잔뜩 부은 눈을 억지스레 뜨며 엄마를 발견한 순간 배시시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엄마아아 하며 달려와 폭 안기는 부스스한 머리의 삼십이 개월 꼬맹이를 안아줄 수 있는 것,
“잘 잤어?” 하면 “웅 잘 자떠” 하는 고 얼굴이 ‘엄마가 있다’는 행복감을 뚝뚝 흘린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는 속히 클 것이다.
그나마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사람 사이 섞여 일하고 떠드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살림을 좋아는 할 지언정 야무지게 잘 하지는 못하는 사람이 십오년 다닌 회사를 그만둘 수 있을까 싶고
내 주변 열 명 중 아홉 명이 “애 그맘 때 다 고민해~ 근데 그때 관두면 다 후회해” 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다미의 아침 웃음을 못 봤고 난 봤다.
난 다미 엄마이고, 나에게 지금 가장 행복한 것은 다미의 아침을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후회 없는 일이 있을까?
관둬서 후회한 사람도 있지만 관두지 않아서 아쉬움을 계속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관둬서 (돈, 인간관계, 커리어 등 때문에) 후회하더라도 아이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을 한다는 것이 꼭 이 회사를 다니는 것을 의미할까?
오늘 급식 모니터링에서 만난 어떤 엄마도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카페 창업을 한다더라.
미국MBA 나와서 회사 멀쩡히 다니는 남편도 꼬셔서 장사할 거라더라.
과거의 내가 선택한 길이 지금의 나에게, 5년 후의 나에게도 맞는 길인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
이제 낼모레글피면 아침 일곱시 반부터 회사에 있어야 하고
우리 애 잘 등원했나 키즈노트 알람이 올 때까지 맘 졸이겠지.
고민은 끝이 없으나, 끝을 내고 결론을 지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Now or n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