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워킹맘의 살림
전투를 할 것인가, 예술을 할 것인가
몇 주동안 손끝이 야무진 살림 인플루언서의 SNS 포스팅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가 닳도록 자주 사용하는 각종 살림템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걸 사면 저절로,
나의 주방도 그녀처럼 될 것마냥.
이걸 쓰면 저절로,
나도 SNS 속 그녀처럼 평온하고 즐거울 것처럼.
실은 그녀도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인데,
내가 만들어 놓은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며 그렇게 되고싶었다.
실은 일을 열심히 하기도 하지만
살림 중 몇몇 종류는 나도 꽤 즐기면서 하는 것 같다.
단,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지금 살림은 그냥 말 그대로 전투,
네가 죽냐 내가 죽냐의 것.
새벽 출근하고 이른 퇴근을 하고 동동거리며 어린이집 하원을 한 후
옷도 갈아입지 못한 상태로 부리나케 인덕션 2-3구를 돌리며
(이미 좀 늦은 시간인) 아이 저녁밥을 하고
그래도 밥은 새 밥으로 먹이고 싶은데 (가끔은 전기밥솥에 이틀 사흘 묵은 밥도 모른 척 주기도 하고)
그래도 국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맘먹고 끓여서 소분해 냉동한 쇠고기 미역국을 작은 소스팬에 녹이고)
반찬은 단백질, 식이섬유, 무기질, 칼슘, ... 어 그러니까 고기나 생선, 초록 채소, 김치도 놓고...
퇴근할 때처럼 동동거리며 불 앞에 서서
아맞다, 빨래도 밀렸지, 남은 수건 여유 있나?
아맞다, 바닥 언제 닦았지, 어제 고기 굽고 기름 튄거 남은 거 같은데
아맞다, 쌓인 재활용 어떻게 하지... 현관 터지는 거 아닌지, 남편 눈엔 저게 정말 안 보이는 건지
밥만 하는 것도 아니고, 애랑 잘 놀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안 정돈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저녁시간을 보내면
나 역시 녹초.... 에고, 아무것도 더 못하겠다 예라이 잠이나 자자 내일도 새벽 출근..
나도 살림을 예술로 하고싶은데,
친환경 청소 세제 조금 섞은 물에 소창 걸레 야무지게 꽉 짜서 바닥 손걸레질 빡빡 하고
널어놓은 빨래 착착 걷어 탁탁 개서 팍팍 제자리 (이게 중요함.. 대개 제자리 못찾고 널부러진다) 찾아 정리하고
유기농 채소와 무항생제 고기로 불고기 재고, 손수 만든 밑반찬 대여섯 개에, 과일도 예쁘게 미리 썰어놓았다가 재빨리 대령할 수 있는
오전 할일 끝내고 힙한 원두 갈아 드립커피를 천천히 내리는 그런 살림.
전쟁인가, 예술인가.
지금 내가 서있는 곳과, 내가 가고싶은 곳 사이에서.
단상을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