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lee Apr 19. 2022

피로사회


1.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사실, 과연 사실일까?


우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종종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심리상담을 다녀온 적이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컴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상담사 선생님께 들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열등감'의 의미와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단어였다. 문자 그대로 컴플렉스(Complex)란 복잡하게 얽혀있는 감정, 조금 더 쉬운 말로 순화하면 '응어리'라는 것이다. "컴플렉스가 열등감이 아니었구나. 여태 이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의 컴플렉스 그러니까 내 마음 속의 응어리는 '능력에 대한 집착',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아닐까 하는 상담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았더랬다. 그간 명확하게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했으나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마음 속의 '응어리' 대한 고민을 종종 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피로사회"라는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늘 피곤한거 같고, 피곤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어. 나는 대체 왜 이렇게 피곤할까?"


2. "피로사회의 기원"에 대한 한병철 교수의 진단


이 책은 "왜 (현대사회의) 인간은 이렇게 피로하고 우울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흥미로운 질문이다.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글 중에서 이처럼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는 질문을 던지는 글은 많지 않은데, 이 책은 그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한 것 같다.(그러니 이 책이 잘 팔리는 거겠지?)


저자는 피로사회의 기원을 전근대적인 규율사회에서 현대의 성과주의 사회로의 전환에서 찾는다. 이러한 주장은 얼핏 들어도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왜' 혹은 '어떻게' 성과주의 사회가 피로사회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기존의 설명과 사뭇 다르다.


글의 기본은 (적어도 학계의 기준에서는) 이 글이 '누구'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한 글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박의 대상이 거물일수록 그 파급효과가 크다. (물론 어설프게 반박을 했다가는 다른 의미로 파급효과가 클 수도 있다)


이 글의 저자의 '타겟'은 알랭 에랭베르(Alain Ehrenberg)인듯 하다. 에랭베르도 저자처럼 규율사회에서 성과주의 사회로의 이행기가 인간의 우울증 그리고 피로사회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에랭베르는 인간의 우울증과 피로사회는 성과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과정에서 개인에게 부여되는 '자율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즉, 시키는대로만 살다가 갑자기 자율성이 주어지니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하다가 지쳐버린다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피로사회의 기원은 성과주의 사회 이행기에서 개인에게 부여되는 '자율성'이 아니라 개인에게 끊임없는 성과를 강요하는 '성과주의'라는 새로운 규율이 인간을 우울하게 만들고 사회를 피로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개인이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성과를 강제하도록 만드는 성과주의 사회로 인해 인간은 '사색'을 위한 시간을 박탈 당하고, '활동적인 삶'을 강요받는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과'를 창출하면서도 스스로를 소진해버리는 악순환으로 인해 오늘날의 피로사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우울증과 피로사회를 만드는 것은 '자율성'이 아니라 '규율'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성과주의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규율하도록 강제하는 사회이고, 전통적인 규율사회에 비해 인간의 우울증과 피로사회를 가속화시키는 또 다른 규율사회라는 것이다.


3. 감상평


일단 좋은 글은 '좋은 질문'으로부터 출발하고, 좋은 질문이란 많은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고민의 요소가 담겨 있으면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흥미롭고, 이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 기존 학자들이 제시한 '답'에 비해서 얼마나 더 설득력이 있고, 독창성이 있는지 일텐데 그 부분에서도 어느 정도 선방하지 않았나 싶다. 일단, 내가 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이 책이 반박대상으로 삼는 에랭베르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철학자인지는 모르나 철학 문외한인 내 기준에서 봤을때 에랭베르의 주장보다는 저자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보였다. 다만, 같은 사회와 규율 하에 있더라도 다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특성은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남았다. (물론, 학문적 글이라는게 특정 변수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변수를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측면이 있긴 해서 유효한 비판지점은 아닌듯 하다)


이밖에도 '성과주의 사회'라는 체제(system) 수준의 변인을 통해 인간 내면의 우울증이라는 개별 객체 단위의 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는 점이 좋았다. 다만, 책의 분량이 짧고 대중서를 의도해서인지 인과적 관계에 대한 설명이 촘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이 부분도 지극히 '사회과학적' 시각에서의 비판이기 때문에 철학서, 특히 철학대중서에게 들이댈 수 있는 잣대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간만에 글을 쓰기 위한 독서가 아닌 '독서를 위한 독서'와 그를 통한 '사색'의 시간을 선사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고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와대 정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