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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월 Jan 20. 2020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글발 좋은 언니들의 이야기

[1주 1권] 2020 3주 차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들은 모두 글로 돈을 버는 글쟁이들이다. 그래서일까 거침없으면서도 공감 가는 이야기에 첫 장을 읽자마자 ‘어머, 이 책은 사야 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들은 각각 76년생, 77년생으로 나보다 한참 언니들(사진을 보면 훨씬 어려 보여 믿기지 않지만)이고, 둘 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둘이 같은 집에 함께 살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이유를 담담하게 풀어내었다.


밤이면 잡생각과 일종의 불안 같은 것에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너무나 공감되어서 책을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구절이다. 나는 26살에 취직하면서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다. 혼자 살기 시작한 뒤, 정사각형의 8평 원룸에 누워 잠들기 위해서 나는 꽤 오래 뒤척여야만 했다. 유난히 복도에서 나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방이라 이웃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는 소리에도불안에 떨었다. 자기 전에 누워서 한 번 무서운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번은 잠에서 깨 화장실에 가는 길에 내가 걸어둔 옷이 사람인 줄 알고 깜짝 놀랐던 적도 있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는 방에서 혼자 자더라도 방문 너머에 다른 가족들이 자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는 줄 몰랐다. 자취 중에 가끔 친구가 내 방에 놀러 와 잘 때면 유난히 깊게 잠들었는데, 타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결혼을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난 주위에 비혼 주의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왜인지 내 친구들은 내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나 스스로도 막연히 내 삶에 결혼이란 참 까마득히 먼 존재로 느껴진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워낙 남에게 도움받는 걸 불편해하고 혼자 해내려고 하는 독립심 때문인 것 같다. 자취방 계약부터 이사오던 날 바닥에 새로운 장판을 까는 것까지 철저히 혼자 했으니 평소에는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비혼 주의를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은 지옥이야'라는 입장을 취하며 오는 인연도 거부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흐름에 맡기리라.


어쨌든 글쓴이들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별일이 아님을 나도 공감하는 바이다. 그리고 개인의 선택으로 인한 다양한 모습의 삶은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획일화된 모습의 가족만 제대로 된 삶으로 인정받는다면, 나 또한 그 외길을 걷기 위해 얼마나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게 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곧 나의 미래일 수도 있기에 그들을 더 응원하게 된다.


둥지 같은 집의 주인과
집요정 도비의 만남


글쓴이 두 명 중 한 명은 원하는 물건을 다 집으로 불러들이는 둥지형 인간이고, 다른 한 명은 집요정 도비처럼 열심히 집을 청소하는 정리형 인간이다. 상극 같은 관계의 두 사람이 만나 한 집에 살게 되니 정말 많이 싸웠다고 한다. 결국은 서로를 향한 배려(금전적인 보상을 포함해서)로 매우 잘 지낸다니, 괜히 내가 다행이다. 나도 교환학생 시절 집 하나에 둘이서 살았던 적이 있다. 난 혼자 있을 땐 굳이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진 않지만, 둘이 살면서 부터 상대방이 언제 그릇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식사를 하고 나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습관이 돼서 같이 밥을 먹을 때도 식사가 끝나자마자 내가 벌떡 일어나 그릇을 정리했는데 나중에는 본인이 치울 테니 제발 5분만 앉아 있자고 말했다. 사람의 행동양식엔 정답이 없어서, 누군가의 행동이 나에겐 정말 거슬리지만 지적하기엔 상대방의 잘못이 아닌 상황도 많다. 예를 들어, 부먹 찍먹과 같이 말이다. ‘그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느냐는 공동생활을 할 준비가 되었느냐에 달려 있다’는 글쓴이의 말처럼 몇 명이 살든 필요한 마음가짐은 비슷할 것이다.  


친한 친구의 어머니에게는 대가 없이
따뜻한 한 끼를 얻어먹는다.


나이가 몇 살이든 관계없이 부모님에게 자식은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마음이 쓰이는 존재며, 특히 타지에서 혼자 사는 경우 더 애틋하다. 혼자 사는 딸, 아들은 밥이나 잘 챙겨 먹을까 걱정이 되지만 친구와 둘이 산다고 하니 왠지 안심일 것이다. (책 속의 말마따나 결혼 적령기가 아예 지나버려 결혼 잔소리가 없을 때가 돼야겠지만...) 결혼을 하면 남편을 챙기는 것은 당연시되지만, 친구를 챙기는 것은 호의다. 의무를 이행함으로써가 아니라 호의로서 하는 일에 대해선 칭찬도 후하다. 실제로 글쓴이는 상대방의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을 잘 같이 먹어 주는 것 만으로 예쁨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회사에 있는 ‘멋진’ 30대 여자 선배들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회사에 40대 여자 선배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는 현실이다.) 그들은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고, 그렇기에 나를 배려하는 방법을 안다. 물론 모든 30대 선배들이 그렇다는 게 아니므로 앞에서 ‘멋진’이라는 단서를 달아야만 한다. 또 이미 치열하게 사회에 적응하였으므로 때로는 내가 부장님과의 세대 차이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기꺼이 조언자의 역할을 한다. 그들은 이미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있으며, 그 취향은 오랜 경험의 결과이므로 나의 선택보다 나을 때가 많다. 단, 그들은 절대 ‘네가 와인 맛을 아냐? 와인은 말이야. 어?’라고 나의 미숙함을 놀리지 않고, 다만 더 나은 선택지를 보여줄 뿐이다.


참 재밌게 읽었고, 부럽기도 하고, 힙하기도 한 삶을 엿본 것 같다. 글발 좋은 언니들 둘이 사는 이야기가 궁금한 자는 이 책을 읽어보시라.


p.s.1 한 가지 나 스스로가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성실한 직장 생활로 40대에 한강이 보이는(은갈치처럼 가늘지만) 망원동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지만, 90년대생은 그럴 수 없다는 점이다. 화폐가치보다 부동산 실물가치가 오르는 것이 훨씬 가파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책 속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성실한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금융소득을 늘리기 위한 금융투자 공부도 머리 아프게 해야만 한다.


p.s.2 왜 힙한 사람들은 모두 고양이를 키울까? 글쓴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웃들도 모두 고양이를 키운다. 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화면 너머 눈으로만 예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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