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립디스의 소리가 잦아들었고 뻥 뚫린 바다가 펼쳐졌다. 나는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스킬라가 있었던 낭떠러지 기슭은 거대한 모래톱이었다. 그 위로 뱀처럼 생긴 여섯 개의 목이 아직까지 어렴풋이 보였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가 돌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초반에 키르케는 인간 글라우코스 매력에 빠져서 그를 신으로 만들었다.
신이 된 글라우코스는 키르케는 안중에도 없었고 스킬라를 좋아했다.
더군다나 스킬라는 이런 키르케의 마음도 모르고
글라우코스에게서 받은 선물 이야기며 그가 청혼을 했다는 등
그와의 데이트 이야기를 키르케한테 쏟아낸다.
키르케는 이런 스킬라를 여섯 개의 뱀처럼 생긴 목을 가진 바다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이 부분은 단순한 키르케의 질투심만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겉모습과 달리 스킬라는 요물이었고 착한 글라우코스가 그런 요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
키르케가 만든 그 괴물로 바다를 항해하는 많은 선원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텔레마코스(오디세이아 아들)와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가 그 괴물을 돌로 변하게 하고 더 이상 피해가 생기지 않게 했다.
바다에서의 안전과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부분,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신이 해결하는 장면에서 키르케의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인간에 더 가치를 두었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가득하다.
키르케는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죄로 고문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 앞에 가서
'인간이 어떻게 생겼느냐'라고 묻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은 저마다 다르게 생겼고, 한 가지 공통점은 불사의 존재가 아닌 것이 신과 다르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럼 인간은 그 유한함을 어떻게 견디느냐'라고 질문하는데
그는 ' 최대한 잘'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남자는 모두 인간이었다.
오디세이아와는 아들까지 낳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면서 자신이 만든 약초를 마신다.
500쪽
나는 평생 전진한 끝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졌으니 그 나머지까지 가져보자.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또한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렇게도 담겨 있다.
499쪽
내 육신의 종착지는 당연히 흙이다
또한 신의 영원함보다 인간의 유한함이 더 소중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키르케가 글라코우스한테 '너한테 나보다 더 충성스러운 베필은 없을 거야.'라면서
사랑고백을 하지만 거절당했을 때 아픔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74쪽
칼날이 내 가슴을 관통하듯 날카롭고 격렬했다.
하지만 나는 죽을 수 없는 몸이었다.
데일듯한 순간을 견뎌가며 계속 살아야만 했다.
델듯한 고통을 안고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만큼 더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신의 영원함 보다는 인간의 유한함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키르케는 태양 신인 헬리오스와 샘물과 시냇물의 정령인 림프 나이아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들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이지만 가장 말단 림프였다.
9쪽
맨 처음 태어났을 때 나에게는 걸맞는 이름이 없었다. 주위에서는 내가 어머니와 이모들과 사촌들과 비슷한 줄 알고 나를 림프라고 불렀다. 하급 여신 중에서도 가장 말단인 우리는 워낙 능력이 미미해서 영생이나마 가까스로 보장할 정도였다.
아무런 재능이나 능력이 없는 신에서 스스로 노력해서 마녀가 되는 그런 부분도 훌륭했다.
그 역시 인간을 신으로 만든 죄로 외딴섬인 아이아이에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신세한탄만 하지 않았다.
108쪽
새장에서 사육당하는 새는 되지 않을 거야, 흐리멍텅해서 문이 열렸는데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처럼 살자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르케가 새장에서 사육당하는 새가 되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마법을 익히기 위해 ,
마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매 순간순간 노력을 했다.
또한 그 마법이 잘 발휘되는지에 대한 두려움도 순간순간 많이 느꼈다.
인간인 글라코우스를 신으로 변신시키는 순간이다.
66쪽
나는 꽃을 한 웅큼 집어서 그의 입에 대고 쥐어짰다. 흘러나온 즙이 한점으로 모였다. 한 방울, 한 방울씩 그의 입안으로 떨어뜨렸다. 방향을 찾지 못한 한 방울이 입술에 떨어지기에 손가락으로 밀어 혓바닥 위로 넣었다. 그가 콜록거렸다. (중략) 튜닉이 벌어진 틈새로 그이 가슴에서 돋아나는 수포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따개비였다.
얼마나 초조하고 긴장했을까?
아빠 없이 아이를 낳는 순간,
이 배속에 아이가 정말 괴물일까 인간일까 두려움 속에서 초조하게 출산을 기다리는 마음,
또한 너무나 힘들게 출산하는 광경,
또한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정성스럽게 키우는 모습 등 등
여신이지만 인간적인 면, 엄마의 마음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작가 메들린 밀러는 1978년생으로 고전학 학사와 석사를 받았고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10년간 집필한 첫 장편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첫 장편소설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뒤에 두 번째 장편소설로 <키르케>를 집필했다.
작가는 '키르케'가 서양문학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마녀라는 점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키르케'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장편을 엮어나간 점이 대단했다.
현재 이 책은 HBO MAX에서 8부작 드라마로 제작 중이라고 하니 그 또한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