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보다 레넌을 더 좋아했던 구 러시아 청년들
우리는 비틀스 영국 취재를 떠나기에 앞서 영국 BBC에서 제작한 <비틀스 소련을 뒤흔들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어디에서 이런 자료까지 찾았는지 하여간 작가가 취재팀들에게 비틀스와 관련된 자료라면 책이든 영상자료든 뭐든지 찾아 팀원들한테 전달했다. 소련에서의 비틀스 열풍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비틀스가 크렘린 궁을 움직였다는 내용으로 엑스레이 필름으로 복제 LP를 만드는 등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았다. 우리는 60년대 소련에서의 비틀스 열풍에 대해 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영국 BBC에서 러시아어 방송을 담당하는 예브게니 카니야브스키 기자를 만났다. 그는 BBC 러시아어 방송 10년 차 기자로 맨 처음 BBC우크라이나에서 근무를 시작해 BBC 모스크바를 거쳐 지금은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공산국가였던 스탈린 시대에는 팝 음악은 듣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다. 재즈도 소련 스타일로 편곡되어 방송됐는데 스탈린 사망 후 많이 바뀌었다. 그 시발점은 1957년에 열렸던 세계 청년학생축전이었다. 그때 서구 학생들이 팝 음악이 녹음된 테이프들을 갖고 들어왔다. 그 후 60년대 초반 비틀스가 데뷔하면서 비틀스 음악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다. 러시아어로 방송되는 외국방송 영향이 컸다. 영국 BBC 러시아어 방송이나 미국의 소리 방송인 VOA 및 RFU(자유 유럽 방송) 등을 통해 비틀스 음악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다. 북한에서 KBS 대북방송인 한민족방송이나 미국의 소리 방송(VOA), 자유아시아 방송(RFA)을 통해 한국 가요나 팝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구소련에서도 러시아 향으로 방송되는 영국이나 미국의 라디오 방송매체들을 통해 소련 젊은이들이 비틀스 음악을 접했다. 처음 접한 비틀스 음악은 그들이 그동안 들었던 음악과는 천지차이였다. 획일적이고 선전적인 음악에서 파격적인 음악으로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비틀스가 데뷔하고 인기를 끌 때 러시아에서도 같은 시기에 인기를 끌었다. 대중들 사이에서 비틀스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러시아판 비틀스 커버 곡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틀스 노래만을 연주하는 러시아 밴드들이 등장했다. 물론 다 비공식적이었다. 학교라든지 콘서트 장에서 비틀스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가끔은 구속당하기도 했다. 티켓을 팔면서 공연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비틀스를 노래하는 많은 밴드들이 생겨나면서 기타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군수공장에 잠입해서 줄을 훔쳐오는 경우도 있었다. 예브게니 카니야브스키 기자의 말이다.
“한 명은 전자기타를 해야 하는데 좋은 줄이 없는 거예요. 줄이 잘 잡아당겨져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까 군수 공장에 몰래 잠입해서 몇 개를 비밀리에 가져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전자기타를 만든 사람도 있었고, 소련제 기타가 너무 안 좋아서 직접 기타를 만들어서 친 사람도 있었죠.”
그 당시 대표적인 비틀스 밴드의 노래인 <Yeah, yeah Virus>를 가사를 잠시 살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2dChyNNAmV4 Yury Pelyushonok
비틀스는 우리의 질서를 모두 바꿨네
60년대 소련은 온통 그들의 음악
러시아 학생들은 스타가 되려고
비틀스를 연주하고 기타를 만들지
선생님들도 모두 빠져들어 즐기고 있네
공산주의 사회에 갑자기 나타난 비틀스
브레즈네프 동지도 결국 두 손 들었지
모두가 밴드를 만들었네
비틀스 열풍
비틀스 열풍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는 노래이다. 비틀스 음악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그 당시 구소련에서는 비틀스 음악을 금지했는데, 어떤 경로로 유통이 됐을까? 그의 대답이다.
“엑스레이 필름을 이용한 LP음반이 제일 많이 유통됐어요. 질은 좋지 않았지만 숨기기 좋았던 장점이 있었죠. 두 번째로는 서구에 간 사람들이 음반을 몰래 구입해 유통됐는데 가격이 굉장히 비쌌습니다. 예를 들면 그 당시에는 비틀스 음반 하나와 서구의 청바지 한 벌과 거의 비슷한 가격이었어요. Levi’s 청바지 한 벌이 거의 100달러로 비싼 가격이었는데, 비틀스 음반 가격도 그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비싼 가격을 주고 음반을 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브게니 카니야브스키 기자의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에서 들려주는 음악이나 문화, 콘텐츠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된 거예요. 러시아의 인공적인 문화, 가공된 것들에 싫증이 난 거죠. 그런데 비틀스는 너무 충격이었죠. 비틀스를 통해 문화가 어떻게 다르게 갈 수 있는지, 노래를 통해서 어떻게 사람들 감성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 거죠. 비틀스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런 그룹이 됐습니다. 비틀스가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사람들이 비틀스를 점점 듣고 싶어 했어요. 자기들이 원하는 노래를 듣고 싶어 했고, 자신들이 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고, 러시아의 밴드들이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러시아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한 거죠.”
물론 비틀스가 소련을 붕괴시켰다고 하는 건 과장법이지만 일조는 했다고 말했다.
소련을 바꾼 것은 레닌이 아니라 레넌이라 말도 있는데 러시아에서는 이런 조크가 유행했다고 한다. 유명한 시인이 ‘나는 러시아어를 한다. 왜냐하면 레닌이 러시아어를 하기 때문이다.’라고 썼는데 이걸 패러디해서 ‘나는 영어를 한다. 왜냐하면 레넌이 영어를 하기 때문이다.’
소련 붕괴한 후 2003년 5월 폴 메카트니가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 기자는 운 좋게도 그 공연 현장을 갔었다며 그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최고였죠. 바로 앞에서 봤어요. 첫 줄에는 엄청 사치스러운 옷을 걸친 상류층들이 공연을 관람했는데 그런 사람들조차도 흥에 겨워 춤추고 난리가 난 거예요. 가장 압권이었던 순간은 <The Fool on the Hill>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로 저녁 해가 언덕 너머 지는 거예요. 그 순간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도 엄청난 감동을 받았죠. ‘But Fool on the Hill, Sees the sun going down, 그러나 언덕 위의 바보, 해가 지는 것을 본다.’라고 노래하는 순간과 실제로 해가 언덕 너머로 떨어지는 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어요. 지금은 폴 메카트니 목소리도 많이 변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최상의 목소리를 유지하던 때였으니까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의 감동이 어떠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리고 콘서트에서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기획을 얼마나 철저하게 했는지도 느껴지는 대목이다.
탈북인 가운데 소해금을 연주하는 분이 북한에 있을 때 결혼식장 피로연에서 남한 노래를 불렀다가 잡혀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북한에서도 일부 계층에서는 결혼식이 끝난 후 피로연장에서 신부 측과 신랑 측이 모여 일종의 기(일종의 권력) 싸움 같은 것을 벌이는데 그는 피로연장에서 신랑 측 대표로 주병선의 칠갑산을 불렀다. 그런데 다음날 보위부에서 그를 데리러 왔다. 그는 자기가 노래를 잘 불러서 초대받아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한 가요를 불러서 잡혀갔다. 어떻게 풀려났느냐고 물었더니 그 가요가 남한 가요가 아니라 연변 가요라고 주장하고 또 신랑 측이 권력과 닿기도 해서 이래저래 힘을 써서 풀려날 날 수 있었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남한 가요가 많이 불리어지고 BTS에 대한 지구촌 투표에서 북한에서 투표한 표가 통계에 잡히기도 했다고 하는데 서구 팝이나 남한 가요들이 북한에 어떤 영향 미칠까? 그의 답이다.
“약간 비교하기가 애매한데, 소련은 스탈린 압제가 있었고 고르바쵸프의 개방이 있었고 그 개방에 맞추어서 팝 음악들이 들어와서 개혁개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었어도 똑같은 분위기잖아요. 그래서 정치체제의 변화가 없기도 하거니와 둘째는 북한 주민이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됐는지 모르겠다.” 고 했다.
그렇다.
위에서의 변화와 아래로부터의 준비가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 가요나 팝 음악을 듣는 것이 일종의 취미생활만이 되어서는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2018년 평양공연에서는 남한의 걸 그룹까지 참여할 정도로 북한의 많은 주민들이 남한 가요를 듣는 것으로 안다.
비틀스가 공산사회였던 구소련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일조를 했다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만한 음악은 무엇일까 고민해 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