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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KIM Nov 07. 2020

불혹(不惑)

'... 삶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이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지요. 때문에 진로결정은 단순히 직업 선택만 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내 삶의 역사와 가치관 목적의식이 모두 응축된 매우 중요하고 신중한 작업이라 할 수 있어요.'

최근 받은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불과 1년 전, 나는 내가 가진 장점 중 하나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었고 그 시간 동안에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었다'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함과 동시에 나는 깊은 자존감 하락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제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 되었던 부분이 제일 못하고 있는 것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였다. 그 후 문득 한가지 질문이 뇌리에 박혔다.

'그럼 나는 뭘 잘하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쌓아 왔던 나의 가짜 정체성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부분 마취 후 일정 부분만 도려내고 다시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그곳에 채워 넣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옳고 그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전부 다시 정의해야만 했으며 그 모든 것에 앞서서 나에 대해서 다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내가 간절하게 필요로 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혹은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인생의 특정시기에는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다. 특히나 위에 상담사가 말한 것처럼, 진로 결정을 앞둔 사람이라면 더더욱이 자신의 삶의 역사와 가치관, 목적의식을 제대로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잘 알면서 막상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를 제대로 아는 것 그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번 글을 통해서는 내가 사용했던 '나'를 알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금 나누어보려고 한다.


1. 다양한 경험을 직접 하기 그리고 글로 적기

내가 누구인지 다시 정의 내리는 것은 어려웠다. 평소에 내가 쓰고 있는 브런치의 자기 소개란에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입니다.'라고 적었을 만큼 나는 혼자서 생각을 즐겨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은 하면 할 수록 정리가 되기는커녕 점점 더 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생각만으로는 나를 정의 내릴 수 없다.'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자리 잡은 신념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 할 때 그들의 다양한 성향과 행동을 파악하고 조심스럽게 그들을 정의 내리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파악은 그 노력조차 하지 않거나 단순히 자신에 대한 고찰로 마무리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나는 내 행동들을 기록하고 그 때의 감정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처음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나의 행동이 상당 부분 주체성을 결여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하루를 돌이켜 보니 내가 원해서 하고 싶어서 한 행위들보다는 사회 구조상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그리고 나서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운동을 하거나 핸드폰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는 행위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를 지내면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행위 하나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기록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본능적으로 원하는 일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기 / 재즈 음악 감상하기 / 조용한 곳에서 독서하기 / 트레일 런닝 / 농구 / 글쓰기

그리고 그것들 하나하나 실천해보기 시작했고 그때의 감정들을 적어보았다. 소소하지만 감정이라는 새로운 것이 내 일상생활 가운데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행동을 통해 내 감정들을 적고 나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성격이 급하고 빠른 변화를 원하는 사람인지도 인식하게 되었고 여유롭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여유가 주어지면 불안해지는 심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흘러가는 대로 그저 살아가기를 바라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자신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상황과 감정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게 되고 소극적으로 삶에 임하면서 자신을 진정으로 치유하고 행복하게 해줄 행위들을 찾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삶에 내재적인 불만을 쌓아두게 하고 그저 피곤함에 찌들어 삶을 게으르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나 자신을 알아가려면 일단 일어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겨보자. 그러면 그것이 정말 나랑 맞는 일인지 자신과 안 맞는 일인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을 적어보자. 그렇게 행동 하나하나를 적으며 귀납법적으로 자신을 알아가 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사람들과 나누기

자신이 원하는 행동들을 하고 경험을 적었다면 이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우리와 자기가 생각하는 스스로는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이 파악한 '나'에 특징을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면, 나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 할 수 있다. 더불어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의견 또한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에 그들의 판단을 참고하여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데 사용 할 수도 있다.

사람들과 자신이 파악한 ‘나’를 나누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 또 한번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혼자서 자신을 파악 할 때와 다른 사람 앞에 있는 나를 파악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이 ‘나’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우리 주변의 환경이 ‘나’라는 존재를 정의한다. 잘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의 모습과 가족과 있을 때 나의 모습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나의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이 다른 것도 확인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주변 환경일 때가 많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파악 할 때 우리 주변 환경의 변화도 기록하고 그에 따른 나의 모습도 적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군대에서의 시간동안 일주일에 한 번 동기들과 이런저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종종 내가 생각하는 요즘 나의 상황들을, 나 스스로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고 동기들의 생각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어려운 군생활의 시간 동안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진 지금, 가족들에게서부터라도 자신의 생각과 글을 나누고 그들의 피드백을 받아보자. 그러면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더 올라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 -위정편- 에는 공자가 40대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경지를 불혹(不惑)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데 공자는 이 경지에 오르기까지 40년이 걸렸다고 한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이 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지요…’

빠른 성장과 사회로부터의 인정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은 종종 시간 낭비라고 생각되는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쉽다고 여겨지며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자도 40대가 되어서야 불혹(不惑)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데, 과연 우리가 아무 노력 없이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까? 그리고 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가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알아 세상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내적인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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