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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한 Oct 19. 2022

준비된 신랑, 준비된 신부

다시 결혼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면서 아무래도 두 번 실패하지 않기 위해 예전에는 어떤 점들이 문제였던지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나 자신 혹은 예전 배우자, 혹은 양가 어른들까지도 무엇인가가 모자랐고,  준비되지 않았고, 서로 달랐기에, 그리고 그것들이 결혼기간 동안 개선이 되지 않았거나 악화되었기 때문에 이혼에 이르렀을 것이다. 첫 결혼을 준비했던 시간으로부터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달라졌고, 아마도 예전보다는 준비되어 있으며, 자존감도 높아져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며,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예전에는 어떤 점들이 부족했으며, 그것이 나의 문제인지 나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외부의 문제인지, 배우자의 문제인지 생각해보려 한다. 결혼을 생각하거나 계획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미리 말해두지만 진리의 케바케는 존재하며, 이 글에서 언급되는 문화나 인식이 내 개인의 생각이 아닐 수도,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먼저, 쉽고 명확한 주제부터.
바로 경제적인 자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율이 떨어지고, 모든 가정과 관련된 사회문제들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결국 경제적인 문제, 짧게 "돈"이다. 남녀평등이 중요시되고 여성인권이 많이 올라오긴 했지만, 여전히 남자들이 집을 마련해오는 것에 대한 기대는 존재하고, 그런 인식들이 개선되어 신랑신부가 힘내서 집을 마련하려 해도, 인식이 개선되는 속도보다 집값이 상승하는 속도가 빠르다. (물론 여전히 여자들에게 기대되는 것들도 존재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예전 배우자의 부모들 역시 그 점에 대해 기대했고 빠른 포기를 했지만 아쉬움을 갖고 있었고, 나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도 성격 문제인지라 전혀 눈치를 보지 않거나, 오히려 난 없으니 내어 놓으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확실한 건 조금 부족하더라도 서로 원만히 합의가 되어 상처나 부담을 주지 않거나, 아예 준비가 되어있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돈도 돈이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 역시 뒤따라야 한다. 결국 부라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인지라 많아도 불만은 있을 수 있다. 불만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 불만이 배우자에 대한 존중을 깔고 앉는 순간 지옥은 시작된다. 이를테면,


누구 집 사위는 P(방패모양 엠블럼의)사의 C(비싼 그 SUV)를 뽑았다더라. 

누구 집 사위는 어디 집을 가져왔다더라. 


실제로 들어보거나 지인이 들은 이야기들이다. 

웬만해서는 심하게 차이나는 환경의 남녀가 만날리는 없다. 대부분 그들이 (불만이 있더라도) 선택 가능한 범위의 사람들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고, 각자 어느 정도의 불만은 안고 갈 수 있다. 사람의 품격은 그 불만을 스스로 어떻게 잠재우고, 잠재우지 못한다면 점잖게 나타내지 않을 때 돋보이는 것이지 않을까. 가능한 저런 부류의 배우자나 그 가족들을 만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이미 내 배우자로 맞이했다면 그마저도 품어주고, 품어주지 못할 관계라면 미셸 오바마의 이 말을 기억해보자.

When they go low, we go high. 



두 번째는 자존감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오만함이 아닌 자존감.


결혼은 두 사람의 만남이지만, 배우자만큼 나 자신도 중요하다. 심성이 여린 사람들일수록 상대를 배려하고 스스로를 희생하기 마련이다. 내가 선택한 나의 배우자이거나 배우자가 될 사람이기에 웬만한 공격이나 물질적, 언어적 폭력에도 입 다물고 감내한다. 그런 폭력적이거나 억울한 상황에서 날 구해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고 더 정확하게는 나의 자존감이다. 짝지어주는 대로 결혼하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다. 내가 하기 싫고 피하고 싶으면 피할 수 있다. 단지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용기가 필요할 뿐.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인지, 배우자는 내가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지키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인지, 이런 관점에서 잘 따져보시길. 


아, 진리의 케바케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외도나 폭력이라는 대접을 받을 사람은 없다는 점도 진리에 가깝다.



세 번째는 주로 남자분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점인데,
바로 부모로부터의 정서적인 독립이다. 


돌싱이 되고 만나본 여성분들 중에서도 꽤 여러 분들께서 예전 배우자에 대해 이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남자들에게서 조금 더 이런 경향이 있는 듯하다. 실제로 그 여자분들께 물어본 배우자들의 직업은 꽤 좋은 특정 직업군에 몰려있었다. 물론 여자분들 중에도 부모나 예전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고, 남자가 (나름) 중간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아내에겐 부모의 편에 서있고 독립을 못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


서로 다르게 자라 온 두 사람이 만나도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일이 수두룩한데, 거기에 양가 부모님의 의견까지 추가되면 갈등만 생기고 결론은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의 조언은 물론 감사히 들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 잡혀있고 놓친 부분이나 다른 시각이 필요할 때 조언을 듣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따르거나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이런 분들에게도 이유는 다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많은 경우인데, 나는 이런 경우가 아닌지라 어떻게 할지 모르겠으나 (암묵적일지라도) 복종을 조건으로 부모의 지원을 주거나 받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나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품을 떠날 부모의 의견만 따르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네 번째는 시간에 쫓기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30대가 되고 30 중반을 넘어서면 주변의 시선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쫓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인생을 마치 숙제하듯 살아와서 어릴 때는 시험을 잘 봐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면 결혼을 해야 하고, 이런 일련의 생각에 사로잡혀 취직하고 나서는 빨리 결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생은 숙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지도 않는다. 갑자기 로또 같은 큰 사건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화양연화'에 해당되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준비가 안된 너무 어린 나이나,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후보다는 화양연화에 좋은 배우자를 만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따지고 보면 수두룩 하겠지만, 이 네 가지가 나의 결혼과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곱씹어보면서 깨달은 점들이다. 잊지 말자. 다 조금씩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와 나의 행복이라는 것을. 때로는 몸이 고되거나 불효자, 불효녀가 되더라도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힘든 세상 살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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