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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상 May 21. 2023

정말 백 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타고 있는 무언가를 좋아했다. 연소되는 물질의 불꽃을 보는 것과 시공간의 변화를 일으키는 이동 수단에서의 경험 모두 해당한다. 어떠한 한계를 느끼게 하면서도, 무언의 진리 같은 것을 유념하게 만드는 그런 줄거리 말이다.


집단과 형태, 역할과 보상 너머에서 이 모든 선택과 기준을 세워 나가는 주체는 확률 및 문제 해결에 종속되어서 쓸모만을 연마하는 사회의 주춧돌로 흘려보내게 될 세월을 알고 있었을까.


허언 섞인 유랑자의 전단지 같은 인생 설계 방법은 어떤 대단한 이념도 정교한 사회이론도 아니다. 쉽게 얻은 소속감을 불가항력적이었다는 수식으로 에워싸고, 거짓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는 유행의 중심에 내가 있지 않길 바란다.


기호를 빙자한 타입 캐스팅으로 소비되지 않고, 규칙도 모른 채 내달리다 탈진하지 않기 위해 도입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 갭이어만이 아닐 테다.


자신이 되었어야 했을 누군가를 익명으로 연모하게 만드는 건 애석하게도 익숙한 사람의 욕심 섞인 낯선 말이다. 고유할 수 있었을 자신은 뒷전으로 미룬 채 자라버린 그는, 어느 늦은 날 골몰하다 탄식하며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사라져버린 천재들은 편향된 행복을 조장하는 판테온의 장엄함에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나눠 가질 내가 있다면, 서로가 오롯이 자신의 시간 속에 있을 때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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