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한증 일기 1
다한증과 30년을 함께 살았다. 만약 내가 80세까지 산다면, 앞으로 50년은 더 공존해야 한다.
내가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듯이, 다한증도 함께 늙어가는 것 같다.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나의 특징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물론 없어진다면 두 팔 벌려 환영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사춘기 소녀 시절에는 아예 자르고도 싶었다. 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이토록 나를 힘들게 했던 다한증. 오늘은 나의 다한증 일대기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처음 다한증을 인식했던 건 중학생 때였다. 어릴 적 학교에서는 회색의 얇은 종이, 즉, 갱지를 사용했다. 나는 갱지를 잡자마자 적셔버리곤 했다. 손에 땀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내장이나 시험지를 뒤로 넘길 때 부끄러워 손을 최대한 숨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땀이 부끄러웠다. 손은 항상 등 뒤의 어딘가에 숨겨 두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할 때도 손은 꺼내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친밀감을 표시할 때 손을 활용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누가 내 몸에 닿으면 화들짝 놀라 피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싫었지만, 그래도 땀을 들키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날도 평소처럼 손을 숨기고 친구들과 얘기 중이었다. 마침 화장실에 다녀와 손을 씻고 온 상태였다. 그런데 친구가 갑자기 당황스러운 말을 했다.
"네 손, 갱지에 찍어봐."
심장이 쿵쾅댔지만 애써 침착한 척했다. 느릿느릿 손을 꺼내 갱지 위에 살포시 얹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 방금 손 씻고 와서."
갱지에 붙였던 손을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물기 때문에 갱지가 딸려왔다. 그래도 안심이었다. 마침 손을 씻고 왔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으므로. 화장실 다녀온 뒤에 이런 질문을 받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이어진 친구의 대답 때문에.
"너 근데 원래도 손 축축하잖아."
이 말은 내 머리에 박혀 버렸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 뒤로 어떤 대답을 했더라. 그런 건 기억나지 않는다. 굉장히 당황하고, 얼굴이 빨개지고, 손에는 더 많은 땀이 고였던 것만 기억난다. 당시에는 그 친구들을 크게 원망했는데, 되돌아보면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저 자신과 다른 것(나아가 비위생적인 것)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아니었겠는가.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놀라버린 내가 문제였던 것이겠지.
아무튼 그 뒤로 나는 손을 더욱 철저히 숨겼다. 손만 숨기는 걸로는 부족했다. 그냥 나 자체를 숨겼다. 내 존재감을 지웠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갖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내성적인 아이로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물을 내뿜는 손과 발. 차라리 자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불편한 점은 셀 수가 없었다. 오로지 다한증을 겪는 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
어쩌면 지금의 내 우울감은 여기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났다는 사실까지 원망하게 만들었던 내 치명적인 단점.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