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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un Ryu Jul 05. 2024

순후한 시간이 흐르는 곳

Hinterland Hostel / Saxon Switzerland

스위스인 척하는 독일, Saxon Switzerland(작센 스위스)는 드레스덴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하이킹 후에 다시 드레스덴, 아님 베를린으로 돌아가도 될 만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현재 기준, 시간 부자인 동시에 운명적으로 나무와 물로만 채워진 사주를 자랑하는 나는 강과 산으로 여러겹 둘러쌓여 내적 친밀감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다.

Kurort Rathen역에 내려서
그림같은 풍경들을 따라 걷다보면
저 멀리 오늘의 숙소가 보이지요


조금 늦은 오전에 도착해서, 짐을 맡겨두고 서너 시간 동안 느림보 하이킹을 하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짐을 찾아 넣고 큰groß사이즈 커피를 부탁하여 마당 벤치에 자리를 잡고 마셨다. 맞은편에서 눈맞춤하는 호스텔 멍멍이 슈미트와 친해지고 싶어 먼저 대시했으나 낯 가리는 점잖은 성격인지 쉬이 곁을 내주지 않아 바라보기만 했다.

기댈 수 있는 등받이와 넉넉한 사이즈의 테이블은 사랑
Große Kaffee, 3유로
점잖은 슈미트 군


작지만 옹골차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덩굴 담장 너머에는 텐트 예닐곱 개가 들어갈 만한 작은 야영공간과 텃밭이 자라나고 있다. 뒷마당에는 누가 봐도 직접 만든 화덕과 여럿의 오래된 손길이 느껴지는 벤치들이 단정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유 공간은 본래 헛간이었던 곳이다. 들어서면 천장에 집을 지은 대여섯 마리의 새들이 낮은 비행으로 날아다닌다. 비가 와서 그런가 갈데 없어진 녀석들은 빗소리에 질세라 시끌시끌 배배배배 소란히도 운다. 둥지가 천장 한가운데 있어서, 그 아래서 밥을 먹으면 내 밥을 같이 먹어야 되는 것이 아닐지 잠시 염려가 스친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계란 3개와 우유를 섞은 대충대충 스크램블과 맥주로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헛간에서는 다들 책을 보는데, 이 독서를 방해하는 꾸러기들도 모두 이 녀석들이다. 새들에게, 그것도 실내에서 독서를 방해받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귀로 영어와 독일어와 새소리를 섞어 들으며 눈으로는 아름다운 단어와 말이 속삭이듯 쓰인 박완서 슨생님의 에세이를 읽었다. 내용이 시골바람을 쐬러 남도를 여행하는 내용인데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바보 여행’이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두었다.


책 읽던 친구들은 어느 순간 독서가 지겨운지 탁구를 치기 시작해서 귀에 핑퐁이는 소리가 더해졌다. 내가 아는 탁구가 아니라 테이블을 돌면서 다 같이 치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면 세 명이든 네 명이든 그 이상이든 같이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서 흥미롭다. 호스텔 최적화 방식 같기도 하다. 함께하자고 권해주었으나 초면에 취중탁구는 민폐일 것 같아 그냥 적극적으로 구경을 하는 것으로 했다.


사람도, 새도 원하는 시간을 가지는 서로에게 모두 한 없이 순후한 밝은 밤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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