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드라이클리닝 맛집 방문 건에 대하여 / 영국, 런던
20년 만에 방문한 런던에서 고민 없이 1번 방문지로 꼽은 곳은 테이트 모던이다.
말만 너무 많이 들어서 신기루와 같은 그곳. 그런데 테이트 모던을 이렇게 기억하게 될 줄이야.
테이트 모던에서 뭐가 젤 좋았어?
핸드 드라이어.
물도 비싼 런던에서는 뭐든 아껴야 하며, 난 환경을 아끼는 의식 있는 현대인이지 -라는 마음으로 텀블러 가득 담아 온 물이 가방 안에서 와장창 다 쏟아진 것이다. 긴장을 해서인지, 그냥 둔한 건지 한 톨도 안 남기고 전부 다 쏟아졌는데 나는 그냥 무릎이 갑자기 좀 시리네? 많이 걸어서 그런가 (사실 그 정도로 안 걸었어...)라고 생각을 했을 뿐 가방 안에서 물이 그렇게 시원하게 다 쏟아졌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고 그냥 맛있게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뒤집어진 텀블러가 뱉어낸 약 300밀리의 물이 가방 깊숙이 스며드는 중이었고, 새로 산 가방은 최선을 다해 방수로 대응하며 바닥 가득 수분을 머금었다. 카페에 비치된 휴지 사용도 정도 껏이지.. 이건 거의 짜야 되는 수준이라 누가 딱히 뭐라 한 건 아니지만 눈치가 보여 촉촉한 가방을 들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데이트 모던 건축이고, 전시고 뭐고 화장실 먼저 들어가서 가방 안에 든 거 주섬주섬 꺼내고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감아 꾹꾹 눌러 말려보는데 끝도 없이 나오는 물. 대체 얼마나 먹은 거니. 그러던 중 문득 눈에 들어온 핸드 드라이어. 소리부터 남다르다 역시 다이슨. 원래 젖은 옷 급하게 말릴 때 드라이어 쓰니까.. 이번엔 특별히 가방을 한번...
오오오오!!!!!!
강력한 힘만큼 굉음을 내었기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또 눈치를 보며 쓰긴 했지만, 그동안 버린 휴지가 무색하게 나의 가방은 순식간에 말랐다. 미술관 화장실에서 가방 말리기는 또 첨이네. 나가는 길에 드라이어 과다 사용료라 생각하고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도네이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