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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un Ryu Jun 24. 2024

그냥 배를 놓쳤다.

멀쩡하게 서있다가 배 못 타기 / 일본, 마쓰야마  

일본에서의 둘째 날. 


아침 7시부터  평소답지 않게 부지런을 떨며 차근차근 트램을 두 번갈아 타고, 걸어와야 할 길을 운 좋게 셔틀버스까지 찾아 타고 안전하게 마쓰야마 페리ferry항에 도착했다. 야무지게 외국인 할인까지 받아 티켓을 사고 배를 타기 위한 모든 준비를 깔끔하게 마쳤다. 돼쓰. 다 해쓰. 


그리고, 배를 놓쳤다. 


눈앞에서 배가 두두두 간다. 8시 25분 배인데 나는 부두에 26분에도 어정대고 있었다. 정말 순수하게 그냥 딴짓하다 놓쳤다. 사실 지난 밤 잠들기 전, 어찌 될지 모르니까 최대한 일찍 이른 아침 배를 타보자라고 마음먹었던 터였다. 셀프미션을 성실하게 잘 수행한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 8시 15분까지 이어졌고 8시 26분 - 눈앞에서 배를 놓친 것이 인지된 순간 - 정적과 같은 멍함이 뇌리를 둥둥 쳐대며 내가 나에게 ‘너 뭐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오는 길에 이제는 일에 관련된 생각도 관심도 모두 닫고 그냥 온전히 나의 시간과 나의 것들을 생각하자 다짐하며 왔더랬다. 그래서 그런가. 일에서 오는 긴장을 털어낸 나는 이리도 말 안 되는 지점에서 종종 어쩌면 많이 허술한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것 같다. 


'사실, 너 원래 좀 그래' 라고. 


함께 덩그러니 남은 가방들과 기념사진  


다음 배는 9시 35분이다. 이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친절한 승무원들이 바보 같은 나의 티켓을 취소수수료 없이 취소해 주었다. 심지어 따끈따끈한 영수증을 판매 창구의 그녀도 기억하고 있어 내게 영수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9시 5분에 이미 한 차례 경험해 본 티켓 구매 프로세스를 경력직의 폼으로 다시 이행한다. 꽤 능숙한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엣헴. (근데 이거 맞아?)


이렇게 오늘로써 나는 코 앞에서 배도 놓쳐본 사람이 되었다. 


9시 5분 페리는 잘 타고 갔다는 억지 해피엔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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