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기 전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바로 운전이었다. 미국은 워낙 운전 없이는 다니기 힘든 건 알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나 생초보인 것. 사람들이 미국 운전이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쉽다고들 하며 미국 사람들은 양보도 잘해준다더라 미국은 도로가 넓어서 편하다더라 등등 용기를 얻을 만한 말을 해주었지만 그래도 겁나는 건 바뀌지 않았다. 미국에 가기 전 빡세게 연습하고 가야지 싶었는데 결국 시간이 없어서, 겁이 나서 못하고, 그냥 될 대로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국에 갔다. 나는 분당 안에서나 겨우 다니고 서울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쌩초보. 고속도로? 아후 무서워서 어떻게 가요. 이런 상태로 미국에 와버렸다. DC에서는 딱히 운전할 일이 없었다. 어차피 일정 중엔 현지 동료의 차를 타고 다녔고 일정 후 혼자 다닐 땐 주차할 곳 찾기도 길도 너무 복잡해 대중교통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애틀은 달랐다. 우선 혼자 학교에 갈 일이 있었고 근처 어딘가를 가려고 해도 대중교통이 너무 불편했다. 물론 우버가 있었다. 하지만 매일 우버를 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갈팡질팡하며시애틀 도착한 둘째 날, 주말이었는데 갑자기무슨 바람이었는지 왠지 운전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샘솟는 것. 가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이 날이 그랬다. 해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운전이라니 왠지 멋져 보이지 않는가! 그래 운전을 하자. 운전을 해보고 가야겠다. 운전 만랩들은 비웃을 일이지만 내겐 엄청난 결심이었다.
그때부터 정말 1시간 넘게 구글맵 경로 미리보기를 돌려보며 그 날의 목적지까지 가는 30분의 길을 외우고 외우고 외웠다. 유튜브에서 미국 운전 동영상을 10개도 넘게 찾아보았다. 심지어 경찰에 잡혔을 때 대응하는 방법도 찾아보았다. 너무 떨려서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일까 했지만 그만큼 너무 하고 싶었다. 아마 이미 내겐 단순히 운전이 아니라, 미국에 온 뒤 보름 동안 이어진 빗장 풀기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저 정도 깡이라면 북한도 갈 수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던 깡다구의 소유자였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세상 모든 것을 겁냈다. 내 몸뚱이가 이제 나만의 몸뚱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 세상을 한정시켜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내게 운전은 막 출산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8차선 도로에서 겁에 질려 거의 멈춰버린 일을 경험한 뒤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게 미국에서의 나 홀로 첫 운전, 게다가 운전 연수 제외, 한국 미국 통틀어 첫 고속도로 주행이니 얼마나 떨렸겠는가. 대단한 과업을 수행하는 양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혼자 차를 끌고 호텔을 나섰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냐고? 무슨 에피소드를 쓸 것도 없이 너무 잘 갔다. 솔직히 처음엔 엄청 긴장해서 온몸의 생체 기간이 그대로 정지된 듯한 기분이었는데 달리다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사람들 말대로 미국 도로는 정말 컸고, 다른 차들은 대체로 잘 양보해주었다. 비록 속도 계기판이 마일 기준인지 모르고 간혹 80을 밟으며, 이상하네 왜 미국은 고속도로 속도제한이 65밖에 안돼? 했지만. 오는 길엔 Exit을 연속 4번이나 잘못 봐서 길을 헤맸지만. 그 외에는 별 실수 없이 호텔에서 목적지까지, 목적지에서 호텔까지 오갔다.주차까지 한 번에 하고 나니안도감과 성취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주차 후 감격해서 사진-
첫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를 헤매이다 마주한 풍경
그 후로도 남은 2주간 종종 운전을 했다. 가야 하는 경로에 대부분 고속도로가 끼어 있었는데 꾸준히 Exit을 못빠져나가는 통에 시간이 배로 걸릴 때도 있고 그게 반복되면 차에서 혼자 악!!! 멍충아!!! 저걸 왜 못 보니!! 소리치는 등 혼자 시트콤을 찍었는데 덕분에경치 구경도 하고 모르던 길도 가고 자신감도 얻고 미국에서 뜻밖의 운전 연수를 하고 온 기분이다. 용기를 낸 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제일 뿌듯한 일 중 하나가 되었다. 결론은, 한국에서 초보더라도 미국에서 운전할 수 있어요. 물론 구글맵도 잘 숙지하고, 교통 법규 (유튜브에 많음) 잘 이해하고요. 그렇담 심지어 고속도로도 문제없어요. 출구만 잘 찾아 나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