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프릴 Feb 12. 2020

초보 주제에 미국에서 겁 없이 운전하기

깡다구의 부활


미국에 오기 전 가장 걱정했던 것이 바로 운전이었다. 미국은 워낙 운전 없이는 다니기 힘든 건 알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나 생초보인 것. 사람들이 미국 운전이 오히려 한국보다 훨씬 쉽다고들 하며 미국 사람들은 양보도 잘해준다더라 미국은 도로가 넓어서 편하다더라 등등 용기를 얻을 만한 말을 해주었지만 그래도 겁나는 건 바뀌지 않았다. 미국에 가기 전 빡세게 연습하고 가야지 싶었는데 결국 시간이 없어서, 겁이 나서 못하고, 그냥 될 대로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국에 갔다. 나는 분당 안에서나 겨우 다니고 서울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쌩초보. 고속도로? 아후 무서워서 어떻게 가요. 이런 상태로 미국에 와버렸다.


DC에서는 딱히 운전할 일이 없었다. 어차피 일정 중엔 현지 동료의 차를 타고 다녔고 일정 후 혼자 다닐 땐 주차할 곳 찾기도 길도 너무 복잡해 대중교통이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애틀은 달랐다. 우선 혼자 학교에 갈 일이 있었고 근처 어딘가를 가려고 해도 대중교통이 너무 불편했다. 물론 우버가 있었다. 하지만 매일 우버를 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갈팡질팡하며 시애틀 도착한 둘째 날, 주말이었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었는지 왠지 운전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샘솟는 것.  가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이 날이 그랬다. 해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운전이라니 왠지 멋져 보이지 않는가! 래 운전을 하자. 운전을 해보고 가야겠다. 운전 만랩들은 비웃을 일이지만 내겐 엄청난 결심이었다.  


그때부터 정말 1시간 넘게 구글맵 경로 미리보기를 돌려보며 그 날의 목적지까지 가는 30분의 길을  외우고 외우고 외웠다. 유튜브에서 미국 운전 동영상을 10개도 넘게 찾아보았다. 심지어 경찰에 잡혔을 때 대응하는 방법도 찾아보았. 너무 떨려서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일까 했지만 그만큼 너무 하고 싶었다. 아마 이미 내겐 단순히 운전이 아니라, 미국에 온 뒤 보름 동안 이어진 빗장 풀기 일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저 정도 깡이라면 북한도 갈 수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던 깡다구의 소유자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세상 모든 것을 겁냈다. 내 몸뚱이가 이제 나만의 몸뚱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 세상을 한정시켜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내게 운전은 막 출산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8차선 도로에서 겁에 질려 거의 멈춰버린 일을 경험한 뒤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게 미국에서의 나 홀로 첫 운전, 게다가 운전 연수 제외, 한국 미국 통틀어 첫 고속도로 주행이니 얼마나 떨렸겠는가.  대단한 과업을 수행하는 양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혼자 차를 끌고 호텔을 나섰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냐고?  무슨 에피소드를 쓸 것도 없이 너무 잘 갔다. 솔직히 처음엔 엄청 긴장해서 온몸의 생체 기간이 그대로 정지된 듯한 기분이었는데 달리다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사람들 말대로 미국 도로는 정말 컸고, 다른 차들은 대체로 잘 양보해주었다. 비록 속도 계기판이 마일 기준인지 모르고 간혹 80을 밟으며, 이상하네 왜 미국은 고속도로 속도제한이 65밖에 안돼? 했지만. 오는 길엔 Exit을 연속 4번이나  잘못 봐서 길을 헤맸지만.  그 외에는 별 실수 없이 호텔에서 목적지까지, 목적지에서 호텔까지 오갔다. 주차까지 한  번에 하고 나니 안도감과 성취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주차 후 감격해서 사진-

 

첫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를 헤매이다  마주한 풍경


그 후로도 남은 2주간 종종 운전을 했다. 가야 하는 경로에 대부분 고속도로가 끼어 있었는데 꾸준히 Exit을 못 빠져나가는 통에 시간이 배로 걸릴 때도 있고 그게 반복되면 차에서 혼자 악!!! 멍충아!!! 저걸 왜 못 보니!! 소리치는 등 혼자 시트콤을 찍었는데 덕분에 경치 구경도 하고 모르던 길도 가고 자신감도 얻고 미국에서 뜻밖의 운전 연수를 하고 온 기분이다. 용기를 낸 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 제일 뿌듯한 일 중 하나가 되었다.


결론은, 한국에서 초보더라도 미국에서 운전할 수 있어요. 물론 구글맵도 잘 숙지하고, 교통 법규 (유튜브에 많음) 잘 이해하고요. 그렇담 심지어 고속도로도 문제없어요. 출구만 잘 찾아 나가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킨포크와 힙스터의 도시 포틀랜드, 3일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