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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Jul 23. 2020

눈 오는 날 연대기

때는 2010년 1월 4일이었다. 날짜와 해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 그 해에 내게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든 일은 입사한 지 막 2년인 내게 아직 신입의 군기가 들어있었던 고로, 새해 첫 업무일이니 어떻게든 회사에 가겠다고 다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해에 일어날 일뿐 아니라 당일의 운명도 알턱이 던 2010년 1월 4이었다.


회사는 1시간 떨어진 경기 남부에 있었기에 당시 나는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어딘가에서 매일 아침 7시  통근 셔틀버스를 탔다. 보통 최소한 6시 반엔 일어나 준비를 곤 했다. 하지만  간밤에 소담히 내린 눈 덕분인지 주변의 정막 속에  6시 50분에 일어나고야  것이다. 한 번쯤 지각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매우 개운하면서 동시에 등골이 서늘한 그 기분.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수철처럼 튀어올라  몸을 넣는다. 그 와중에 눈이 왔으니 부츠챙겨 신고 기상 5분 만에 집에서 뛰쳐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 나중에 큰 보답을 하는 때가 있다. 이날의 부츠가 그랬다.


집에서 통근버스 정류장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면 5분이었다. 사실은 고등학교 시절 체력장의 100m 달리기 17초 오래 달리기 전교 1등 기록을, 입사 후 2년 간 대부분의 아침마다 증명해냈었다. 그런데 이 날은 이미 발목까지 쌓인 눈 때문에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길에 택시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 보니 시간은 이미 7시. 통근버스를 포기한 나는 당시 회사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시외버스터미널기로 했다. 7시 20분에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면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회사에 가야 하는가, 그냥 휴가 내버릴까 지만 다시 한번  2010년의 첫날이니 어떻게든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외버스터미널에 갈 수 있는 마을버스 늦게 와서 7시 20분 버스마저 보기 좋게 눈앞에서 놓쳤다. 이제 이다음 버스부터는 지각이고 회사 앞도 아닌  시내버스로 30분 떨어진 터미널에서 내려야 했다. 이미 회사에 가기로 한 이상, 편의점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빵, 주스, 과자, 커피 등을 샀다. 검은 봉지에 주전부리를 담으니 갑자기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와중에 즐겁다니 참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버스 승강장 앞 벤치에 익숙한 뒤통수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한다. 자세히 보니 당시 제일 친한, 지금도 제일 친한 동기가 티브이를 보며 구운 달걀을 까먹고 있는 것 아닌가. "어머! 너도 놓쳤어?" "너도?" 역시 내 친구.  이 녀석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걸까! 통근 버스, 7시 20분 버스 모두 나처럼 놓치고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무지게 어그부츠까지 신고는. 저 평온한 표정이 어찌 지각한 얼굴인가, 놀러가는 얼굴이지. 거울을 마주한 듯 신난  검은 봉지 둘이 버스에 올라탔다. 8시였다.



이후의 이야기는, 혹시 이 날의 폭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대충 짐작할 것이다. 이날의 눈은 서울 기준 최대 30cm를 기록한 역사적 폭설이었다. 우리는 사 근처 터미널에, 예정대로라면 늦어도 9시엔 도착해야 할 그곳에  12시에  도착했다. 둘이 머리를 박으며 잠을 자고 자고 자도 도로였다.  우리가 자는 사이, 팀장님을 태운 수원발 통근버스아예 통근 버스가 수원톨게이트마저 통과하지 못했다며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는 문자 왔다.  우리 버스불운하게도 톨게이트를 무사통과한 탓에 도로에 갇혀버렸다. 도로에 버리고 간 차 때문에 눈과 차가 뒤섞여 아수라장이었다. 방도가 없던 우리 스에 계속 있을 수 밖에. 겨우겨우 터미널에 내 시간은 집 떠난 지 4시간 후였다. 이때만 해도 끝인 줄 알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정말 성실한 두 명의 3년 차 연구원은 다시 한번, 오늘은 새해 첫날이니 회사로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서두르지는 않고, 어차피 오전 반차니까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자며 눈이 오는 날엔 우동이라며 역 앞 우동집에서 우동을 먹었다. 1월 첫날 소풍 타령을 하면서.  든든해진 배를 안고 회사까지 가는 시내버스 8번을 탔다. 이제 드디어 회사에 가는 것이다. 시 한 번 말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이 버스 탑승으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중간쯤 왔을까. 기사님이 눈 때문에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며 우리를 논밭 한가운데 모리라고 했다.  말이 차로 30분이지 그 거리는 굉장히 먼 길이었.  말 그대로 온통 눈으로 덮인 논밭 한가운데에 내리라고 한다. 황당해하며 내렸다.  그럼 어떻게 했냐고? 터미널을 가려고 해도 회사까지 가려고 해도 최소한 1시간은 걸어야 했다. 그럼, 리의 결심은 빤하지 않은가.  오늘은 새해 첫날이다! 회사에 가자! 회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정비되지 않은 인도의 눈은 무릎까지 쌓여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밭과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없었다. 다행히 부츠를 신고 온 고로, 우리는 무릎까지 차오른 눈을 해치면서 밭 같은 것을 지나 국도 옆길을 따라 걸어갔다. 길이 좁아 둘이 같이 걸을 수도 없어 앞뒤로 줄 선 것 마냥 걸었다. 우리 너무 웃기지 않냐며 그렇게 걸었다. 1시간을 걸었다.


 "야! 우리 안만났으면 어쩔 뻔 했냐!"

 "아까 우동 먹지 말걸 그랬나?"  

 "하긴, 우리 전 버스 기사님들은 어떻게든 간 것 같던데"  

 "근데, 동 맛있지 않았어?"

 "맞아. 눈오는 날 먹으니까 진짜 맛있더라. 그리고 그거라도 안먹었으면 눈밭에 쓰러졌을걸? 너 요새 살쪘자나? 난 너 못끌고 가. 버리고 갔을거야."

"너도 마찬가지거든?"

 "렇게라도 걸으면 살이 빠질까?"

"우리가 터미널에서 만난 건 이렇게 걸어갈 운명이었던거야"

"하긴 그건 그래 낄낄" 하면서.


 차도 없고 사람도 없이 눈 덮인 고요한 도로를 그렇게 걸었다.  이상 회사를 가야하는 이유는 없다. 그냥 가야하니까 걸었다.


오후 2시, 회사에 도착했다. 이미 사무실에 출근한 사람도 없고 출근했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사무실이 아닌 회사 통근버스 주차장으로 갔다. 회사에 가겠다며 아침 7시에 나와 7시간 만인 2시에, 산전수전 겪으며 도착해서는 이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말이다.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나는 그 해 몇 달 후 팀을 옮겼다. 완전히 다른 직군으로 옮겨 사가 아닌 해당 팀이 있는 서울로 왔다. 축복인줄 알았던 그 때의 이동은 10년이 지난 지금 알고보니 그렇지 않았던 것  같지만 위기가 있을때마다 제일 먼저 이 친구를 찾았다. 이런 류의 역사가 계속해서 눈처럼 소복이 쌓였던 고로  평범한 직장동료를 넘어 완전히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눈이 오는 날마다, 새해 첫날마다, 이따금 어그 부츠만 봐도 그 날을 떠올리고 서로를 떠올리고 웃는다. 이젠 새해 첫날이면 뭐 어때 안 가면 되지 뭐라고 깡다구를 부릴 정도의 짬밥이 되었지만, 멋모르던 20대 중반이던 우리는 둘 다 애엄마가 되어 워킹맘의 고난을 토로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해 첫날의 기억이 소풍의 기억처럼 소중히 남다. 는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다가도 이 날 얘기가 나오면 우리 정말 재밌지 않았느냐고 지금 고난이 날아갈 만큼 크게 웃는다.  대단한 일을 도모하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지난 10년간 그리고 앞으로 평생을 크게 웃게할 것은 이 날의 작은 추억이라는 걸  깊이 느끼며 그렇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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