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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Jan 20. 2021

코로나 시대 주말 지낸 이야기

코로나 시대 이전 우리는 거의 매 주말 근교로 나들이를 갔었고 나들이가 어려운 날엔 돗자리라도 챙겨 나가 가까운 공원에서 보드게임을 즐겼고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우리가 주말 저녁에 하는 대부분의 일은 어디로 여행, 나들이 계획을 세우거나 여행, 나들이 다녀온 기록을 남기거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날은 춥고 바이러스는 기승이다.  추워서 돗자리에 앉아 햇볕을 받으며 냥냥 거릴 수도 탄천에서 땀 흘리며 축구하고 들어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고 마스크를 쓰고 종일 실내에 들어가 있을 수도 없다.
 
이번 토요일엔 아침에 일어나서 갈치를 구워 먹고 레고를 가지고 한 시간쯤 놀았다. 그러다가 아이가 침대에 점프하는 놀이를 하고 싶다고 해 침실로 가서 한창 점프하는 놀이를 했다. 문득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잠옷을 입고 침대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내 모습이 너무 추례하게 느껴져  “아, 나는 정말 우아하게 살고 싶었는데”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남편이 아이에게, “엄마가 우아하게 살고 싶대!” 외치더니 둘이 치타처럼 입을 쩍쩍 벌리고 “우아” “우아” 하며 내 몸을 물었다. “이 우아가 아니잖아!” 했더니 이번에는 “우아! 우아!” 하면서 나를 이불로 돌돌 말아 밀었다.

11시가 되자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침대에 깊게 들어왔다. 줄넘기를 들고 놀이터로 갔다. 다음 주에 유치원에서 줄넘기 대회 본선이 예정되어있었는데 유치원에 가지 못하므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방학 내내 연습하라고 일러주기 때문이다. 말 잘 듣는 우리 하마는 나가기 귀찮아도 선생님이 연습하라고 했으니까 나간다. 한참 연습을 하고 놀이터에서 시소를 그네를 타다가 셋이서 숨바꼭질 혹은 술래잡기를 했다. 동네 식당에 가서 점심 식사로 미역국을 먹었는데, 식당에 사람이 거의 없긴 했지만 마스크를 하고 식사 나오길 기다리며 주말에 음식점에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회사에서도 식당에 가야 해서 가긴 하지만 아이와 마스크를 하고 앉아 있자니 왠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화가 나거나 슬퍼지거나 둘 중에 하나니까 될 수 있는 한 생각을 안 하는 게 좋다. 다시 집에 와서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이순신 성 만들기 (옥스퍼드 블록)를 하고 아이는 지쳐서 잠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에는 아이가 어제 완성하지 못한 이순신 성을 마저 만들자며 8시부터 깨웠기 때문에 아침부터 식탁에 앉아 블록을 쌓았다. 9시쯤 배가 고파져서 빵을 구워 블루베리 잼을 발라 먹고 또 앉아서 작품을 만드는데, 아이가 문득 말했다.

“엄마, 코로나가 끝나면 어디 가고 싶어?”
“여행을 갈까?”
“ 그래 좋지! 너무너무 좋아”

머리가 덥수룩해진 남편이 미용실에 다녀오며 식당에서 음식을 이것저것 사 와서 점심으로 차려 먹은 뒤 친정엄마와 함께 화원에 갔다. 집에서 오랜 시간 보낼 겨울을 대비해서 식물을 사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식물을 고민하는 과정을 우리 하마가 너무 지겨워하는 통에 혼이 쏙 빠졌는데 그래도 사 온 화분들이 너무 예뻐서 좋았다. 사실 나는 화분을 잘 못 키우고 관심도 별로 없다. 오로지 집을 더 화사하게 만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지금은 그것이 식물일 뿐이다. 남편은 코로나가 시작된 뒤 얼떨결에 키우게 된 몇 개의 화분을 필두로 식물을 무척 사랑하게 되었는지 식물사랑카페에도 가입했는데, 거의 농부 수준이 된 덕에 나는 이렇게 마음 놓고 화분만 좋아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번에 사온 화분 중 아이가 고른 귀여운 선인장은 남편이 직접 분갈이를 해줬다. 주말의 스케줄은 6세 남자아이의 에너지를 소진하기에 매우 불충분했으므로 아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을 토로하며 잠을 자러 갔다.
 
어젯밤, 두 개의 글을 읽었다.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 취약계층의 고통이 가중되어 더 사각지대로 몰렸다고 말했고 또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 직업, 삶의 터전을 잃은 주변 사례를 열거하며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이미 불균형하게 오고 있음을 지적했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일상이 완전히 무너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말 저녁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 거렸다.  재택근무는 순식간에 끝났고 또 부모님의 도움에 기대며 남편과 텀벙텀벙 휴가를 arrange 해야 했는데 이는 상당히 눈치가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마스크를 쓰고 적절히 눈치를 보다 보면 이 시대를 넘길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히 큰 복일 지도 모른다. 비록 맛집 탐방은 못 가지만 집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아무 고민 없이 침대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예쁜 화분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은 삶을 어찌어찌 이어가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줄넘기 대회가 하루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 모두를 위해 이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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