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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다혜 Aug 01. 2021

솔직히 애국심은 아니었어요

15년동안 내가 반크에서 활동하고 있는이유




저는 15년차 반크 청년리더이자, 반크 자문변호사입니다.


지금은 제삶의 절반쯤을 함께하고 있는 반크(VANK)라는 단체는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의 줄임말입니다. 한국의 입장을 세계에 설명하고, 세계 속에서 한국의 친구들을 만들어가는 사이버외교사절단입니다.



저는 반크를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했습니다.


저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보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멋있어보여서, 덜컥 외교관을 꿈으로 정한  여자아이였습니다.


어떻게 외교관이 될 수 있어? 묻는 저에게 어른들은 공부를 잘해서 이다음에 서울대를 나오고, 외무고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면 외교관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족히 10년은 더 먼 미래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참고 인내하고 기다릴 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당장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반크에서는 박사가 아니어도, 서울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고시를 통과하지 않아도, 지금 있는 그대로 우리가 대한민국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단순히 제가 되고 싶었던 외교관 일을 지금, 당장 할 수 있어서 그래서 좋았습니다. 한국을 알리고,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한국에 관한 오류를 바로잡고.



"독도? 그냥 가위바위보 해"


그렇게 조금 재미있어 하다가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지 않았다면요. 저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하고, 밤을 새면서 했지만, 또 금방 질려서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밤을 새면서 인터넷 소설을 읽었고, 게임을 했고(물론 게임은 재능이 없어서 더 쉽게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본 외무성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책자를 발간하고,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 친구들을 설득해서 캠페인을 했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 캠페인을 위한 판넬을 만들었고, 우리는 당시 독도가 우리땅인 근거를 줄줄 외웠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캠페인 날, 한 외국인이 지나가다가 캠페인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때다 싶어 저는 외워두었던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를 줄줄 설명했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뿌듯한 얼굴로 외국인에게 펜과 포스트잇을 건네면서 '독도에 한마디'를 부탁했습니다.


외국인은 종이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ROCK, SICCORS, PAPER"


그 포스트 잇은 다른 친구들이 보지 않게 얼른 치워버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설득하지 못했던 그 한사람이 제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떻게 표현해야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대학생이 되던 첫해에 반크에서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 - 야드 바셈 박물관 표어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를 잘 설명하고 싶고, 외국인을 설득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제게 반크 단장님이 직접 한 번 원고를 써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제 삶에서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만났습니다. 제가 자라온 한국 교육에서는 늘 답이 있었습니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잘 외우고, 제한된 시간 내에 외운 그대로 쓰면 족했습니다. 심지어 제 대학생활도 그랬습니다.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는 내내 저는 교수님의 생각을 그대로 정리하고 외워서 시험에서 그대로 썼고,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런 제가 만난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한다는 건 비참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냥 좋은 기사를 오려 붙이면, 잘 쓴 논문과 글을 짜깁기하면 금방 저는 글 한편을 완성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제 아이디어와 생각을 담아내자니 저는 혼자서 A4 한페이지도 채우기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을 꼬박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면서 "독도, 이름을 기억하라" 는 영상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제 답에 단초가 되어 주었던 건 야드 바셈 박물관의 표어였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 민족을 파괴하고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려던 나치독일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나치에 희생된 600만 명의 이름과 사연을 기억하고자 한다. 는 박물관 관장의 설명도 있었습니다.


제가 찾은 답은,


우리에게 '독도'라는 이름은 제국주의의 탐욕과 폭력, 야만성을 기억하는 일이고,

우리에게 '독도'라는 이름은 뺏겼던 대한제국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며,

우리에게 '독도'라는 이름은 위안부라는 이름에 뺏겼던 20만명 아시아 소녀의 이름을 잊지 않는 일이며,

우리에게 '독도'라는 이름은 어떤 민족으로 태어났다는 우연한 이유로 이유없는 차별과 폭력이 자행되는 일이 사라져야한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입니다.



"너의 이야기로 채워, 빛날거야" - 뮤지컬 호프


'독도를 기억하라' 는 컨텐츠를 만들고, 그 컨텐츠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저는 늘 미래를 불안해하고, 현재에 불만족해하면서 어딘가로 달려가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어떤 결과가 없이도 그 자체로 즐거웠고 빛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더 이상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게 된 것도 아니고, 계속 도발을 해오고 있지만, 내가 쓰는 글을 통해서 우리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지지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말과 글로 소통하는 과정에 매력을 느꼈고, 대학 내내 다른 대외 활동 없이 반크에서 공공 외교 이슈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잘 알려진 역사왜곡이나 독도에 대한 주제 외에도 통일, 공적 개발 원조(ODA)에 이르기 까지.  동시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는 저의 깊이에 한계도 느꼈습니다. 말과 글로 잘 소통할 수 있는 무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에 로스쿨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로스쿨 생활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모두가 '검클빅'이 되고 싶어했고, 그 속에서 다른 꿈을 꾸는 사람은 '낙오자'였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꿈과 길이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내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가 충족되어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경쟁에서 자유롭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은 늘 '나도 남들이 원하는 걸 같이 원해야하는 게 아닐까? '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척, 비전이 있는 척하지만 실은 내가 굉장한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일까? ' '아직 어려서 뭘 모르는 걸까?' '과연 미래에 나는 무엇이 되어 말과 글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그 즈음 이런 고민을 반크 박기태 단장님께 털어놓자, 단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그래요? 무엇이 되어야 하나요? 언제는 대단한 조직에 속했나요? 지위가 있었나요? 지금 하면 되죠. 말과 글로 잘 소통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싶었던 거 아닌가요? 지금 하면되죠. " 그렇게 반크의 글로벌 청원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로스쿨 3학년을 다니면서, 반크에서 법을 도구로 말과 글로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대단한 애국심은 아니었어요


고백하건데 거창한 애국심과 사명감이라기보다, 반크에서의 15년은 조급함과 부끄러움과 불안함 속에서 내가 내게 뿌리내리고자한, 중심을 잡고자한 노력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거창한 미래가 오지 않아도 않아도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나와 함께 의견을 공유하고,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데 감사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상처받아서 다 그만두고 싶을 때 나를 새롭게하고, 즐겁게하고, 그래서 일상에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조금 개인적인 고백이었지만, 앞으로는 글로벌 청원을 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도전과, 좌절과, 고민과, 우리가 만들어가는 대화를 May we speak?라는 매거진을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jHXWxafDF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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