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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Dec 26. 2022

#3 공손함과 무례함의 문화권

공손하면서도 직설적인 대화법은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화법은 공손함과 완전히 반대편의 스펙트럼에 있다. 


지금까지 내가 여행한 나라를 손에 꼽아보면, 호주, 필리핀,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 잠깐 머문 에티오피아이다. 그곳에서 현지인은 물론이고 많은 여행객들을 만났다. 일본인, 말레이시아인, 대만인, 중국인, 케냐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스웨덴인, 칠레인 등. 그중 대부분의 인연은 일시적인 만남이 아닌 오랜 친구로 이어졌다. 여행은 거의 언제나 즐거웠고, 낯설고 생소한 만남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대화로 이어졌다. 

애써 기억해봐도 여행 중 만난 사람에 관한 불쾌한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 

이스라엘에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유 없이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들. 다짜고짜 화난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이유로 화가 난 것일까? 

내가 그들을 화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타인이 '화났다'라고 인식하는 내 인식상의 알고리즘의 문제일까?

그들은 '실제로' 화가 난 게 아니라 다소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말했을 뿐인데, 나의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그들을 '화가 났다'라고 인식하는 것일까?


나의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동아시아에서도 예의범절로 유명한 한국에서 왔다. 싫다는 말을, 아니요! No!라는 거절의 표현을 감히 쓰기 힘든 문화이다. 슬며시 돌려서 거절을 하는 방법을 익히지 않으면 관계가 꼬이기 마련이고, 간접적인 거절의 표현을 읽을 줄 모르면 센스 없고 눈치 없는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대충 눈치로 긴지 아닌지를 맞출 수 있는 '센스'를 탑재하지 않으면 인간관계 유지에 힘이 매우 든다. 

예를 들어, '집안 어른이 무언가를 권한다'. '근데 딱히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 당신은 뭐라고 말할 것인가? 


집안 어른이 장인어른이거나 시어머니라고 하자. 그분이 당신에게 더 먹으라고 권한다. 근데 이미 너무 먹었다. 그렇다면 적절한 거절의 말은 무엇인가? 더불어 적절한 얼굴표정과 손의 제스처는 무엇인가?

한국문화에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거절하는 제스처'의 표준은 무엇일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표정과 제스처가 무엇인지 보면 안다.


당신이 타문화권에서 '한국적인 공손한 거절의 제스처'로 당신의 의사를 표현한다면,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아니, 혼동을 야기하는 제스처로 여겨질까? 

한국문화에서는 왜 '정확히' "아니요, 안 필요합니다, 이만 됐습니다."가 아니라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건가? 

타인에게 '정확한' 의사전달을 하는 것보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관계를 지키면서 예의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예의도 지키고 의사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사람에게 한국식의 거절을 한다면 그들은 의문스러워할 것이다. 왜 정확하게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고 대충 웃으면서 얼버무리듯이 '아, 괜찮습니다(I am fine, I am okay.)'라고 하는 건가?라고 물을 것이다. 네/아니오의 대답이 필요할 때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문화,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거야? 

네가 말 그대로 '괜찮다. Okay'라고 말했기 때문에 상대방은 긍정의 대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들은 말한다.

'소통에 혼돈을 야기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네 의사를 정확하게 알려줘. 그래야 타인도 헷갈리지 않지.' 

'너의 의뭉스러운 표정과 말 때문에 네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잖아'라는 타박의 소리도 한 스푼 들을 것이다.

이 문화권에서는 어쩌면 예의를 지킨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정확한 의사를 전달해서 소통의 혼돈을 최소화하고 일종의 공손함의 게임에서 야기하는 감정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에게 정확하게 나의 의사를 알려주는 것이 곧 예의인 것이다.


이스라엘 현지인과 외국인 교류 모임, 하이파 파리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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