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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하디 Jul 14. 2024

연약함을 인정해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기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걸까?

어릴 때부터 소화기관이 약해서 어떤 음식을 배부르게 먹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쉽게 탈이 나는 반면 회복까지는 오래 걸리는 편이다. 탈이 나면 그 기간은 좋아하는 음식을 참고 죽을 먹어야 했다. 옆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가족과 친구들을 보며 부러우면서도 쉽게 탈이 나는 내가 참 싫었다.


첫 직장에서는 무리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아 조금이라도 매콤한 기운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장염 신세였다. 여러 차례의 도전과 실패 끝에 고춧가루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음식은 입에 대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그 이후로 육류나 기름진 음식, 유제품, 밀가루를 먹을 때에도 소화가 점점 어려워졌다. 짜장면, 돈가스 등 원래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의 맛을 알고 좋아했기에 먹을 수 없어지면 실망하고 좌절했다.



몇 년 전, 갑자기 큰 복통이 있어 검진해 보니 담관에 걸린 담석이 발견되었고 곧바로 시술을 진행했다. 4년 뒤 결국 담낭 절제술을 했고, 또 같은 해에 충수염이 생겨 맹장 수술도 했다. 갑작스러운 시술과 수술을 받으며 '왜 나는 젊은 사람들이 잘 걸리지 않는 병도, 많이들 걸리는 병도 다 거쳐 가는 걸까?', '왜 병이 발생할 크고 작은 확률을 피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했다. 갱년기가 있으신 엄마께서 다 큰 성인이 된 딸을 간병하시는 모습을 보며 짐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몸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친구들과 모임이 생기면 함께 놀고 싶고, 조금은 먼 지역에서 열리는 강연에 참석하고 싶지만 포기해야 했다. 엄마께서는 "몸 안 좋은데 어딜 가려고, 조금만 참아."라고 말씀하곤 하셨다. 조언을 듣지 않고 무언가를 했을 때는 꼭 몸살이 걸리거나 배탈이 났다. 남들은 큰 고민 없이 하는 일들을 나는 못한다는 사실에 억울했다.


회사에서 해외 전시관을 운영할 기회가 생겨 출장 인원을 모집한 시기에도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그러나 몸의 현실적인 상태를 고려해 봤을 때 지원할 수 없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죽밖에 없던지라 한국에서 식당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해외에서는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특히 직원들과 함께 식사해야 하는 상황이 많을 텐데, 나에 맞춰 특정 식당만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부스를 세팅하고 하루 종일 방문객을 응대하는 업무도 나의 건강 상태와 체력으로는 무리였다.



나를 돌보는 법을 몰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끼니를 굶거나 제때 챙겨 먹지 못했고, 영양가 없는 몇 가지 음식으로 대충 배를 채웠다. 휴식이 필요한 때에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몸이 아플 때면 '왜 맨날 이렇게 아픈 거야?', '왜 남들처럼 빨리 회복하지 못하지?', '왜 나는 성한 데가 없을까?'라며 다그치고 나무랐다. 스스로에게 모진 생각들을 던졌다. 평범한 식사가 어려운 나에게 누군가가 무심코 한 말들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계속 되뇌었다.










몸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

몸이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때, 전반적으로 그런 생각들이 쌓이다 보니 자신감도 점점 줄어들었다.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나를 자책하고,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 몸이 보내는 메시지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해 보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갉아먹던 생각의 고리를 끊기 시작한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가장 스스로를 미워하던 시기였다. 5년 전, 몇 개월 동안 림프샘이 찌르는 듯 욱신거려서 병원에 찾아갔다. 두려움을 가득 안고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검진 후 의사 선생님께서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 증상이 건강한 20~30대 여성이라면 당연하게 일어나는 몸의 반응이라고 하셨다. 당시 치료용 약을 먹고 있었고 가다실9 백신을 맞은 후였기 때문에 몸이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거라고 하셨다. 불안한 마음이 차츰 안정됐다.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몸의 노력에 고마움이 느껴지면서 서서히 나의 상태를 인정하게 됐다. 신기하게도 며칠 뒤 그 통증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내가 아팠던 건 몸이 연약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다. 백신을 맞으면 죽은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열이 나고 림프샘이 붓는 것처럼, 몸은 평소 내가 먹은 좋지 않은 음식과 환경, 스트레스로부터 온 힘을 다해 꾸준히 나를 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내 몸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했구나!'

'그것도 모르고, 난 널 연약하고 부족한 몸이라고 비난하고 책망했구나.'


정작 화를 내야 할 입장은 내가 아니라 몸이었다. 몸이 이렇게 되기까지 방치하고 혹사하고 있던 것이었다. 왜 그때 느꼈던 소중한 교훈을 잊고 다시 자책했던 걸까. 늘 그랬듯 이번에도 몸은 나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긴 시간에 걸쳐 보내고 있었다. 이번엔 미안함이 몰려와 눈물을 쏟아냈다. 사실, 나는 몸을 그저 행복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내 몸은 나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나의 삶 끝까지 함께할 단짝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내 몸을 존중하며 친밀하게 대화해야 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몸이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나에게 쉬라고 천천히 가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보내는 따뜻한 신호에 귀 기울여보기로 했다.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나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쑥스럽지만 어릴 때부터 내 몸 중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부위 중 하나는 배꼽이었다. 지금은 몇 차례 복강경 수술로 흉터가 생겼다. 그렇지만 그 흉터들조차 이제는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각각의 흉터가 내 삶의 일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매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못하지만, 이젠 이런 내 몸을 인정한다. 소화기관이 약한 만큼,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고르고 양을 조절해 먹는 습관을 일찍이 익힐 수 있다. 나의 몸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섬세함'을 지닌 것이다.





나의 연약함도 나의 일부이며, 

그것과 함께 삶을 여행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첫걸음이리라. 나의 연약함을 데리고 나만의 속도에 맞춰, 점점 나아질 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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