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만 원씩 주고받다.
4월 28일,
말에 올라 긴 창을 들고 적진 앞에 선 장수처럼, 전동공구와 몇 가지 드라이버를 들고 에어컨 앞에 섰다. 더는 내부 청소를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공구를 움켜쥔 내 두 손에는 비장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낮 최고기온이 27°c를 가리키던 날이었다.
뒤를 힐끔 돌아보니 주방에 선 아내가 보였다. 개수대 옆에 딸기가 가득 담긴 그릇을 두고 아내는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딸기 퓌레를 만들 거라고 했다.
"고객님, 깨끗한 바람을 선물해 드릴게요."
"네, 저도 딸기 퓌레 만들어서 라테 한 잔 드릴게요."
드르르륵, 전동공구가 제 일을 시작하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에어컨 하부 덮개를 벗기고 볼트를 풀면서 시작된 작업은 상부 덮개 해체와 배선 분리를 지나면서 정점에 달했다가 내부에 장착된 팬을 꺼내면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숨을 고르는 것도 잠시, 모든 구성품에 대한 세척을 진행했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고 헹군 다음, 다시 꼼꼼하게 살피며 닦고 헹구기를 반복했다. 팬과 필터 그리고 덮개까지 말끔한 모습이 됐다. 드라이어로 작은 물기까지 모두 건조하고 구성품 전부를 에어컨 앞에 집결시켰다. 한 번 손을 댔으니 끝을 볼 때까지 휴식은 없다. 바로 재조립에 착수했다.
조립은 해체의 역순이다. 해체하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대략적인 조립 순서를 그려보고, 볼트 하나라도 빠지는 일이 없게끔 집중했다. 모터와 팬을 연결하고 프레임에 넣어 고정한 다음, 에어컨 내부의 모든 것을 하나씩 맞춰 끼우고 상하부 덮개를 모두 씌운 후 조립을 마쳤다.
정상 작동 여부를 살피기 위해을 전원을 연결했다. 스마트 기능이 시작되고 모터가 제 힘을 발휘하자 팬이 힘차게 돌아가며 송풍구에서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세 실외기 표시가 뜨고 바람은 차가워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무리됐다.
"고생하셨어요. 이거 마시면서 좀 쉬어요."
"고객님, 청소비는 12만 원입니다.
딸기 라테가 가득 담긴 유리컵을 받아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하자 아내가 씩 웃었다.
"오늘 만든 퓌레가 딸기 라테 50잔 분량이에요. 청소비 12만 원이랑 퉁치기로 하죠."
식탁에 마주 보며 앉았다. 서로 한 가지씩의 선물을 주고받은 우리의 얼굴은 웃음이 가득했다. 청소비 12만 원짜리 깨끗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제작비 12만 원짜리 딸기 라테를 마셨다. 시원하기로는 바람도, 딸기 라테도, 둘 모두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