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이야기
몇주 강원도 평창에서 지내고 있어요.
올 때는 덥고 습한 날씨여서 얇은 옷들만 잔뜩 가져왔는데 지내다 보니 어느새 추워져 두고온 두꺼운 옷들이 간절해졌습니다.
평창이 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좋아서 자주 왔고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이제는 기쁘거나 슬플 때, 혹은 별일 없을 때라도 여러가지 핑계를 만들어 자주 오곤 합니다.
이번에는 마음먹고 꽤 오랜 기간을 머무르고 있네요.
이왕 있는거 머무르는 동안 이것저것 해보자며 계획들을 잔뜩 세웠는데
막상 돌아갈 때가 가까워서 무엇을 했나 생각해 보면 하늘을 보는 일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아무것도 안하고 종일 봐도 좋을 만큼의 하늘이 밤낮으로 매일이라서요.
얼마전에는 평창과 횡성 사이에 위치한 태기산을 다녀왔어요.
큰 바람개비처럼 생긴 풍력 발전기가 모여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바람이 들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을 알려준 베짱이 농부는 개인적으로 6번이나 7번 풍력발전기 앞이 제일 좋다고 하네요. 전부 돌아봤다고 하니 믿을수 있을 거예요.
밤이 되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그곳에 텐트를 치고 밤하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더라구요. 하늘의 색이 하루하루 깊어지는 걸 보니 정말 가을이긴 하네요. 좋아하는 계절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들이 좋은데 그럼에도 무심히 지나버린 한 해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한켠이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라니 나이들었나봐요.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땐 맛있는 걸 먹는 수밖에 없어요. 태기산 중턱에는 감자옹심이와 감자전을 파는 트럭이 있어요. 산중턱에서 먹는 강원도 옹심이의 맛은 투박하지만 복잡한 생각들을 날려 보내기에 더할나위 없을 만큼 충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바람이 들리는 곳에서 가을을 만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