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MLB캡이 한창 유행이었다. 대학생이었던 누나가 생일 선물로 MLB캡을 하나 사줬는데, 그걸 3년 간 참 많이도 쓰고 다녔다. 'SF'가 겹쳐서 쓰여진 네이비색 모자였다.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로고라는 건 아주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MLB가 그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이라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하루 종일 쓰고 있으면 머리가 조금 아프기도 했는데, 모자라는게 원래 그런건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모자가 프리사이즈였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여러 번 상처를 받은 뒤였다. 엠티를 가서 친구의 모자를 빌려 쓰려다가 내 머리는 어느 모자에나 쉽사리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럿이 어울려 찍은 사진을 보고 유난히 프레임 점유율이 높은 익숙한 얼굴에 놀란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내 머리가 평균보다 조금 크다는 걸 알게 된 친구(악당)들은 언제부턴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특히 머리가 작은 친구 L과 C는 나의 왼쪽과 오른쪽에 저희들의 얼굴을 가지런히 놓고선 이게 'H2O'라며 깔깔대기도 했다.
진짜 충격은 군대에서 왔다. 훈련소에서 군복과 함께 군모자를 보급받을 때였다. 보통 58~60을 고르는데, 나는 61이었다. 그것도 꽉 끼어서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62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 이것이 군대인가. 다양성에 대한 존중같은 건 역시 먹다 남은 짬밥 축에도 못 들어가는 것인가. 심지어 군용 헬멧은 선택권이 많지 않았는데 가장 큰 것조차 오래 쓰기엔 빡빡해서 내부 고정장치를 제거한 채 훈련을 뛰어야 했다. <DP>의 작가 김보통보다 옛날 군대였지만, 내 군생활의 진짜 시련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아니라 군 보급품의 '가혹한 사이즈'였던 것이다.
지극히 평균지향적인 모자의 사이즈는 군대를 벗어난 민간 영역에서도 여전히 가혹했다. 옷가게의 예쁜 모자들은 마네킹 친구들의 비현실적 비율에 맞춰져서 써보는 것조차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함께 쇼핑을 할때면 괜찮은 모자를 발견할 때마다 이런 건 어때, 이것도 한 번 써봐, 하며 꾸준히 권했다. 마지못해 집어든 모자가 내 머리 위에 '씌어지지' 않고 '얹혀진' 걸 몇 번이나 보고서도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비슷한 고민을 하던 회사 선배가 알려준 '큰모자닷컴'이라는 온라인쇼핑몰을 발견한 후에도 정작 거기서 내 모자를 산 건 아내였다.
생각보다 세상은 다양한 두개골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찾다 보니 조금 듬직한 머리 둘레를 가진 사람도, 쓸만한 모자는 많았다. 이제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서 모자를 고를 때 옷색깔에 맞춰서 골라 쓸 정도는 되었다. 평균으로 수렴하는 집중도가 높았던 학교와 군대에서와는 달리, 사회에 나오니 사람들은 타인의 소소한 크고작음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프리사이즈가 필요한 건 내 마음가짐이었던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