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가장 낮은 곳에 담아 둔 비밀
모자와 신발
3살 터울인 언니와 나는 지하철역으로 7 정거장 정도 떨어진 대학에 다녔다. 여대였던 언니네 학교 앞에는 옷가게와 아기자기한 카페와 분식집이 많았고, 여대가 아니었던 나의 학교 앞에는 음식점과 술집이 많았다. 새내기 티를 벗고 맞이한 봄, 주변을 둘러보니 파스텔 톤의 트렌치코트와 5~7cm 정도의 펌프스 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캠퍼스를 거니는 학우들이 보였다. 당시 언니 학교 앞은 최신 디자인인데 질도 나쁘지 않은 보세 구두를 파는 가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인생 첫 힐을 산 이후, 과외비를 타는 날 들러서 한 켤레 두 켤레씩 사서 썸 타던 친구가 오는 술자리에,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모임에 갈 때마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나섰다.
쑥쑥 컸지만 아쉽게도 165cm에서 성장이 멈췄다. 3센티만 더 컸어도라고 생각하며 품어온 꿈의 키가 168cm 었다. 168만 되면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테가 나고, 로퍼나 플랫을 신어도 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구두 위에 올라타니 168을 넘어 170을 가뿐히 된 기분이었다. 구두의 굽이 신체의 일부가 된 듯했다. 돈으로 산 내 꿈의 키. 사랑해요 자본주의.
에너지가 넘쳤던 20대엔 데이트마저 전투적이었다. 주중에는 서로 열심히 일하고 주말 중 하루나 만날 수 있어서 그랬으려나. 아침 8시부터 만나 밤 12시까지 데이트를 할 때도 컨디션 좋을 땐 7cm, 월경 중이거나 피곤할 때 마저 5cm 높이의 구두와 함께였다. 광활한 놀이동산도 씩씩하게 걷고 명동과 강남 일대도 구석구석 걸었다.
날이 좋은 봄날, 오래간만에 남자 친구와 인왕산에 올랐다. 그날만큼은 오랜만에 운동화를 신었다. 적당한 난이도의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아마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려 한 식당에 들어갔을 거다. 좌식으로 된 자리만 여석이 있어서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았다.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고 난 뒤 화장실에 가려고 신발을 신던 중, 무심코 본 남자 친구의 운동화. 그 속에 들어있는 검은색 물체는 깔창이었다. 그래서 내가 신발을 벗고 올라갈 때까지 기다린 걸까? 그러고 보니 오래 걸어야 하는 날, 구두를 신었던 나 만큼이나 힘들어하며 종아리를 주무르던 남자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감추고 싶어 하는 듯해서 오랫동안 남자 친구의 깔창을 모른 척했다. 원래 연애할 때는 붕 떠 다니는 기분 아닌가. 나 역시 구두 굽에 올라타 총총 걸으며 이곳저곳을 둥실둥실 다녔으니.
높은 구두가 척추에 주는 악영향이나 발가락과 발바닥에 가하는 부자연스러운 압력 등 여러 가지로 신체의 밸런스를 망치는 걸 그때는 알았던가 몰랐던가. 아마 알았어도 굽을 포기하지 못했을 거다. 다행히 큰 내상은 입지 앉았다. 다만 양쪽 발 4개의 발가락이 모두 엄지발가락 쪽으로 휘어져 있다. 네 번째와 새끼발가락의 발톱은 안쪽으로 돌아가 있다. 함께 전장을 오간 구두가 남긴 영광의 상흔이라 생각하면 이상하려나. 그나마 다행인 건 평지를 붕 떠다니는 기분으로 열심히 연애하던 힐녀와 깔창남은 각각 운동화녀와 슬리퍼남이 되어 서로의 곁에 있으니, 때때로 달콤한 그때의 단편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슬쩍 웃어보는 것도 적잖은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