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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립 Oct 20. 2022

[중독] 의외의 순간에 만난

중독과 싫증

 문학 동아리에는 세 명의 남자 선배들이 있었다. 두 살 위인 N은 젠틀하고 지적이었다. 글을 아주 잘썼다. 산문시를 주로 썼는데,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독창적인 은유가 돋보였다. 2월생이라 실제로는 나와 동갑인 Y는 다정하고 털털했다. 처음보는 사람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선배, 동기, 후배 모두 그를 좋아했다. 동아리 부회장인 K는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했다. 조직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이었다. 그러면서도 생색을 내는 일은 없었다. 누구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먼저 연락하게 될 것 같은 듬직함이 느껴졌다.


 나이도 성격도 다른 셋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담배를 핀다는 것이다. 그 때는 이미 동아리방에서 흡연이 금지된 후였다. 셋은 수시로 우르르 몰려 나가 담배를 피고 들어왔다. 무슨 재밌는 얘기들을 했는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세 남자의 입가엔 늘 웃음이 가득했다.


 그 웃음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스무 살이나, 스물 한 살이나.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1년이지만, 스무 살의 내게는 사계절의 무게가 조금 달랐다. 좁은 교실을 벗어난 캠퍼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먼저 살아낸 사람들이 내게는 너무도 커 보이기만 했다. 그래서 선배들과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어떤 것을 만들고 싶었다. 담배를 피고 싶다고 생각한 때였다.



 주말 저녁에 동네 친구 S를 불러냈다. 나보다 먼저 흡연자가 된 S의 손에는 파란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담배 한 갑이 쥐어져 있었다. "피우면 좋은가?", "뭐... 나쁘지 않아.", "줘 봐.", "..." S는 말없이 한 개비를 뽑아 내게 건넸다.


 오랫동안 피워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연기를 제대로 삼키지 못해 콜록거린다거나, 깊숙이 빨아들이지 못하고 겉담배를 피운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몸 속 깊이 들어간 하얀 기체는 흉부에 잠시 모였다가 내 몸 전체로 퍼졌다. 순간 세상이 기우뚱, 했다. 담배 연기가 퍼지면서 몸 끝의 영혼의 자리를 빼앗고, 의식은 조그맣게 쪼그라들었다가 다시 펴졌다. 깜박 졸다가 깬 듯한 몽롱함이 나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오 년이었다. 하루에 적게는 반갑, 많게는 한 갑씩 피웠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서늘한 공기가 담배 연기와 함께 내 몸을 훑고 나가는 게 좋았다. 하얀 입김에 담배 연기가 떠올르면 담배를 피워 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비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차양이나 천막 아래에서 피우는 담배는 초콜렛처럼 달콤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혼자 담배를 피우는 날이 많았다. 고작 흡연을 구실로 모여서 선배들과 잠깐 나누는 잡담은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 하찮았다. 오히려 오롯이 혼자인 시간에 담배를 피우곤 했다. 집과 전철역 사이, 버스 정류장과 강의실 사이, 수업과 다음 수업 사이. 일상의 빈 공간을 담배 연기로 채웠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 마다 담배를 피고 있어서였는지 점차 담배 없이는 생각이란게 잘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험 공부를 하려면 수시로 담배를 피워야했고 글의 영감을 떠올리는 데에도 불규칙하게 흩어지는 연기의 이미지가  필요했다. 담배 한 개비를 주머니에서 꺼내고 챠르륵, 불을 붙이는 그 순간은, '지금부터 내가 몰입이라는 걸 시작한다.'는 신호와도 같았다.


 선배들과의 관계는 한 두해가 다였다. 담배 연기처럼 금세 흩어져버렸다. 하지만 그 후로도 몇 년을, 나는 흡연자로 살았다. 담배는 맛있고, 즐거웠고, 낭만적이었다. 조금 달콤하면서 고소한, 약간은 쌉싸름하기도 한 담배 연기를 나는 사랑했다. 감성충이었던 그 시절엔 담배를 찬양하는 시를 휘갈기고는, 그 하찮은 비유에 취해서 또 한 대를 피워 물곤 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아픈 적은 없으니, 내게 특별히 나쁜 영향을 끼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년 만에 담배를 끊었다. 담배가 싫어졌다. 내가 중독되었구나, 생각한 순간부터였다. 맛있는 날보다 맛없는 날이 많았다. 즐겁지 않은데 습관처럼 쥐어 물고 뻐끔거리다 절반도 태우지 않은 채 꺼버리는 일들이 늘었다. 이제 즐겁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으니, 사랑할 이유가 없었다.


 끊어야지, 라고 생각한 다음 날 바로 끊었고 벌써 십 년이 넘게 흘렀다. 끊었다가 말았다가를 몇 번 반복한 것도 아니었다. 헤어진 연인처럼 가끔 꿈에 나타났고, 꿈 속에서 나는 신나게 담배를 피운 후 '금연은 이렇게 실패인가'하고 자책하다가, 꿈에서 깬 후 내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3~4년은 그런 꿈을 꾸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중독의 감정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무언가에 빠져드는 순간은 의외의 맥락에서 찾아온다. 스무 살의 내게 흡연의 단초를 던졌던 학교 선배들의 인스타 피드에는, 이제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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