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을 나누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재를 알리는 작은 의식이다.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본능이 아닌 까닭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인사말'이다. '인사'는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느낌'으로, 반가운 만남에 대한 '감정'으로, 이별의 순간에 대한 '애정'으로, 눈빛이나 몸짓으로도 인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말'로 하는 인사와, '글'로 나누는 인사는 배움의 영역이다. 배우려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고, 배우지 않았다면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 없거나 작을 수밖에 없다. 배운다는 것은 경험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실천할 수 없고, 경험했음에도 실천하지 않을 수 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네?"
이런 인사말을 들어본 적이 한 번 이상은 있을 게다. 아직 이런 인사말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둘 중 하나다. 은둔형 외톨이처럼 인간관계가 거의 없는 삶을 살았거나, 아니면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와 문화에서 계속해서 성장했거나.
어쨌거나 오랜만에 만났을 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인사말 중에 하나다. 반갑다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뜻밖의 장소에 우연한 만남을 강조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저런 인사말은 인사를 받는 쪽에서 보면, 참으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죽을병에 걸려 투병 중이거나, 정말로 그런 고비를 넘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인사가 아니라 악담과 같다. 물론 모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도대체 우리의 인사말 창고라는 것은 왜 이렇게도 바닥이 얇고, 품위나 격식도 없고, 때로는 천박한 것일까?
저렇게 인사하며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렇게 인사를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넘기고, 오랜 기간 와병 중인 사람에게, 그리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서 건네는 첫 한 마디가 "안 죽었냐? 아프다고 그러더니, 살아 있었네요?"라니....
평소 같으면 웃고 넘겼을 텐데, 그 '무식함과 생각 없음'에 그냥 있을 수가 없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무엇하고, 능력 있다고 인정을 받으면 무엇하나, 결국 그 끝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는데. 사람의 수준은 말과 글로 결정된다. 그리고 그것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행동이다.
어릴 때 무식은 죄가 아니지만 나이 들어서도 무식하다면 그건 죄가 된다. 모든 것을 아는 유식을 말함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마치면 알게 되는 상식, 중학교 나이를 넘어서면 알 수 있는 지식, 그 정도면 알 수 있는 것들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인사말을 나누는 것은 인간으로서 존재를 알리는 작은 의식이다.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사람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해가 가기 전에 '나의 인사말 창고'에는, 보물과 쓰레기 중 어느 것이 많은지 점검해 볼 때다.